대학원을 다니던 시절부터 현지 친구들은 살랄라(Salalah)를 마치 노래처럼 읊어댔다. 아랍에 오랫동안 살면서 아직도 살랄라를 안 가봤다며 그들은 나를 보고 놀라하곤 했다. 그럴때면, 도대체 그곳이 어떻길래? 하는 궁금증과 함께, 호수와 바다가 펼쳐진 아랍 안의 어딘가 정도로 미지의 그곳을 상상해보곤 했다. 알 아인의 오아시스 같은 특수한 지역도 있지만, 아랍 안에서는 당연 풀이 무성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나의 편견 때문이었다.
직장인이 되고 가장 슬펐던 부분이, 늘 쫓기는 부족한 아침 시간과 제한된 휴가 일수였는데, 그러던 중 팔월에 이드(EID) 휴가가 찾아왔다. 아랍은 며칠간 이어지는 이 국경일이 일년에 몇 번이 있는데, 아랍으로 해외 취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는 큰 베네핏이다. 이드가 주말과 잘 어우러져 떨어질 때에는 길게 십 일까지도 쉴 수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이드 기다리는 맛으로 직장인 시절을 버텼던 게 사실이다.
아쉽게도 그해 팔월에는 짧게 사일 정도가 주어져, 어디 먼 곳으로 가기에는 부족했던 휴가. 그때 생각 난 것이 살랄라 였다. 시차 없는 가까운 곳으로 가면 우선 체력적으로 시간을 좀 벌 수 있으니까. 마침 살랄라도 6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카레프(Khareef)라 불리는 몬순 시즌이라, 시원한 바람과 비, 그리고 푸른 초원을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역시나 무더운 두바이의 여름에는 초록이 절실했고, 신기하게도 두바이 18년차 제임스도 살랄라는 처음이라, 아랍에 살고있는 지금이 아니고서야 언제 가보겠냐는 마음 하나로 살랄라행 플라이 두바이에 올라탔다.
광활하게 펼쳐진 잔디밭 위로 사람들은 돗자릴 깔고서 옹기종기 앉았다. 그것이 바다 곁이든, 안개 낀 산 중턱이든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마치 오직 중요한 건 자연이 주는 절경 하나뿐, 주어진 이 계절을 부지런히 즐겨내야 하는 특명을 받든 사람들처럼. 아이들은 차의 지붕 위로 얼굴을 내밀고 쏟아지는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어른들은 아주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트렁크에서 돗자리며 담요며 접이식 의자를 꺼내 가져온 음식들을 그 위로 펼쳐낸다. 그들 위로 그어진 전깃줄마다 허수아비 새처럼 길 잃고 쓰러진 연들이 여기저기 걸렸다. 산과 들, 바다가 있고, 그 사이로 폭포와 계곡,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여기는 오만, 살랄라다.
차로 좁고 굽이진 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고 나니, 펼쳐지는 초원과 바위 위 여기저기 낙타떼들이 서서 우릴 환영했다. 그리고 펼쳐지던 대자연의 크고 거친 바다, 파야자 해변(Fayazah Beach). 기나긴 여름으로 부터 얻은 갈증 때문인지 그 시원한 대양을 보니 마치 그간 서러웠던 마음이 거칠게 울어대는 것만 같았다. 세상 가장 서럽게, 또 세상 가장 시원하게. 그렇게 한참을 대양을 내려다보며 마음 속 모든 울분을 쏟아 내고 나니, 이 시원함은 내 피부에 닿는 파도인지 뻥 뚫려버린 내 속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한가지 또렷했던 건, 나를 이곳에 부른 것이 이 바다구나 하는 느낌 이었다.
그렇게 내 안의 모든 체증을 뻥 뚫어버리고 나니 허기가 진다. 새로 만나게 될 다음 숙소로 향하던 길, 바다로 향하던 길 보았던 이런저런 구이들을 팔고 있던 간이 포장마차들이 모인 언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대고 들렀다. 치즈빵이며 옥수수 콘을 집어든 나보다 훨씬 대범하고 자유로운 제임스는 이런저런 고기 꼬치들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건 다해보고 싶은 난 몇 발을 같이 곁들여 보기를 시작했다 (그 중에는 낙타 고기도 있었으리라.) 마무리는 누가 뭐래도 컵라면이었다. 그렇게 알알이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하늘을 날으는 연들을 보고 있자니 어린시절 생각이 다 났다. 언제인지는 딱 정해져 있진 않지만, 꼭 이런 동화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만 같은 어릴적의 어느 날 말이다. 눈이랑 입이 즐겁고, 몸과 마음은 자유로운, 여행의 묘미란게 이런거지. 커다란 바다와 맛있는 것들 있으면 치유 되지 못할 것이란 없다고.
살랄라가 우리에게 추억이 된 것은 또 한가지, 둘다 아랍에서는 처음 해 본 글램핑이 있었다. 하타만 가도 글램핑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사실 사막에 텐트를 가져가 일박 하면 그만한게 또 없어서, 굳이 글램핑 시설을 이용할 필요성이 적은게 두바이 라이프. 헌데, 살랄라 숙소 검색 당시 이색 숙소로 글램핑 시설이 뿅 하고 나타나, 신이나서 눈을 맞댄 우리였다. 실제로 닿은 그곳은 마치 안개가 고고히 깔린 안개성. 숙소에서 함께 운영하는 카페가 마침 그 산 꼭대기에 유명한 방문지라, 오고가는 사람들로 글램핑 장은 꽤나 바빴다. 여름이라 벌레가 많아 울상이 됐지만, 빗소리며, 생기고 또 사라지는 안개 사이로 보이는 폭포며, 산신령이 돼버린 듯한 그 느낌은 또 살랄라의 장마철이라 가능했던 경험이리라. 기억 속에 스위스 플리트비체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봤던 물 색깔이 있었는데, 그걸 살라라의 그 폭포에서 다시 보게 될줄은 기대도 못했다.
물론, 주변분들이 물으면 난 그냥 스위스로 곧장 가라고 말할 것이라. 살랄라의 정체를 실제로 봐야 했던건 나의 운명 같은 것이었다. 나의 그 오랜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 나는 말할 수 있겠지. 네가 말한 그곳엘 나 다녀왔노라고. 그곳은 네말대로 참 굉장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