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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 Jul 13. 2024

반듯한 DIFC 리츠 칼튼 카페에 앉아


 

 

 

  호롱 호롱 숨 쉬는 불빛, 도시적인 반듯함 사이로 넘실대는 라이브 보컬의 흥과 여유. 어떻게들 알고 이렇게나 정성 들여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 통역 일을 하러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공기가 흐르는 팬시한 동네의 이 호텔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세련된 뉴욕의 어딘가가 떠오르는 곳이다. 장소마다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어떤 구간을 지나고 있던 중이었는지, 그날 각자의 품속엔 어떤 음악이 흐르고 있었는지, 생생히도 우리의 첫 만남을 다시 속삭이게 만들던 리츠 칼튼의 한 레스토랑.


  그는 당시 일에 취해있었다. 코로나로 편하게 다니던 직장을 잃고, 덕분에 마음 맞는 동료 둘과 함께 그들만의 회사를 설립했다. 한창 사업 초창기라 그는 취해야만 했으리라. 그는 그가 하는 일을 맹렬히 사랑했다. 올인 밖엔 할 줄 모르는 그는 몇 달 전 한바탕 연애를 끝내고 휴식기를 갖던 중이기도 했다. 밤낮을 잊은 채 일하고, 주말엔 혼자만의 귀한 시간을 만끽하는 만족스러운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엔 데이트 어플을 통해 매칭된 한 귀여운 아시안 여인을 보았지만, 짧게 인사를 나누고는 그는 그녀를 잊었다. 그랬던 그녀가 왜 몇 주후 번뜩이며 떠올랐던 건지. 그는 그녀의 프로필에 걸린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가 그녀가 올려둔 사진들을 하나하나 감상한다. 순간, 그녀를 놓치면 많이 아쉬울 거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었다.


  그녀는 엑스포가 단 한 달이 남았다는 사실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깊이 진동하는 전율을 느꼈다. 단 육 개월짜리 이벤트성 직무라 재밌을 거라는 어렴풋이 달고 온 생각은 이미 싸늘하게 마른 지 오래였고, 두바이엘 다시 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그녀는, 되려 굳이 다시 온 이유를 호되게 따져 물을 만큼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 생활이 한 달이 지나면 끝이 난다니,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되고 다시는 두바이를 볼 수 없다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그녀는 세상 가볍고 호기로운 나비 한 마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열심히 다시는 갈 수 없는 곳들을 밟았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과 만났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으로 웬 눈에 익은 한 훤칠한 서양인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두세 번을 생각했을 휴무 때 한잔 하자는 제안을 그녀는 덜컥 수락하고 만다.


  그때 우리가 처음 만났던 호텔 안 수영장을 낀 그 식당은 딱 오늘의 이곳만 같은 바이브를 지니고 있었다. 너무 근사해서 긴장감을 더 부풀리는, 공간을 신중히 밝히는 불빛들로 그의 눈동자가 유난히 더 깊이 빛나고, 그는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듣고 너그럽게 웃고 있던 그날로. 난 그의 취향을 보고 싶어 그가 자주 가는 단골집으로 날 데려가 달라고 말했었고, 마치 잘 짜인 영화처럼 그날로부터 난 그의 취향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관계학에 있어 브랜드라는 것은 서로를 알기 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사인 같은 역할을 해낸다. 가볍게 넘기려 애썼지만, 두바이의 그 흔한 벤츠도 아니고 아우디도 아닌, 네모나게 딱 떨어진 흑설탕 같은 지프를 끌고 엑스포 숙소에 날 구하러, 아니 날 데리러 온 그를 난 알아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엑스포가 끝나고, 난 한국행 티켓을 포기하고서 그와 남기를 택했다. 그의 반듯한 공간에 정신없이 날갯짓을 연습하던 내가 날아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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