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빛 Mar 09. 2024

틀림없이 행복합니다

Don’t Worry, I Am HAPI

 


  한 달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날은 말도 없이 든든한 빛으로만 어김없이 와있었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동그랗게 떠오른 날. 나의 연인과 나는 보름달이 뜰 무렵이면 이유 없이 예민해져 부딪히곤 해 서로 조심하자 몇 번씩을 다짐하곤 한다. 그날 역시도 며칠간의 시끄러운 침묵 끝에 겨우 화해를 맺고 밤 산책을 즐기려 나가고 있었다. 


--- 새로 입사한 직장 때문에 이사를 오게 된 셰이크 자이드 로드(Sheikh Zayed Road). 일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얼마 전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처럼 낯설고 새로운 두바이 중심부의 이 동네는 늦은 새벽부터 이른 새벽까지 언제나 차들로 붐비는, 잠들지 않는 곳이다. 이사오기 전까진 모토 시티(Motor City)라는, 듣기만 해도 웅웅 엔진 소리가 울리는 동네에서 지내고 있었다. 엔진 좋은 차들이 경주를 벌이는 주말만 피하면 그래도 가든 속에 지어진 듯한 컴파운드 안이라 집 밖을 나가기만 해도 풀들을 보며 거닐 수 있었는데. 호롱불 사이로 우리만의 와인 파티를 즐길 수 있었던 운치 있고 작은 테라스도. 대신 지금은 그가 좋아하는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라운지 풀장과, 레슨 잡힌 시간만 피하면 내려가 뛰 다니며 라켓을 휘두를 수 있는 테니스 장이 지금 우리에게 생겼지만, 왜 지난날들은 그렇게 더 예뻐 보이는 건지. 우리가 그리운 그것은 자유 일거라. 우리의 공간과 우리의 시간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그 펄떡이는 자유. 지금 내가 가진 에잇 투 파이브 오피스의 삶과 이 두바이의 오성 호텔 방에는 그 펄떡이는 것이 없었다. ---


우리가 향하는 산책로는 시티 워크(City Walk)로 이르는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한 퍼블릭 공원이었다. 가을이 온 뒤로 걸어서 출퇴근을 시작하고부터 자꾸만 눈에 보이던 이 공원은 여섯 시면 신비로운 보랏빛을 입은 채로 바삐 집을 향해 걷던 나를 빤히 보고 있곤 했다. 그럼 난 잠시 멈춰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해서. 곧 너만을 보러 올게 약속해.’ 속으로 읊으며 마저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자, 행복 나무와 처음 만나게 된 날. 


황홀한 보름달이 몇 개씩이나 걸려있는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 난 습관처럼 요리조리 그곳을 채운 사람들의 얼굴을 살핀다. 어떻게들 알고 언제부터 이렇게 앉아 있는 건지, 좋아하는 곳에 가면 그곳을 채운 행운아들을 열심히 눈으로 찍어 확인하는 나의 리추얼 같은 거다. 그리고는 자리 잡고 앉아 좋아하는 망고 아이스크림에 빠져든다. 목으로 넘어가는 노오랗고 청량한 그 달콤함에 집중하면서. 그럼 난 마치 잘 익은 달덩이가 되어 멀리서 누군가 본다면 그저 그림 속 또 다른 동그란 빛 하나인 줄 알겠지. 철자가 더 단순한, 그곳의 이름은 해피(HAPI)라고 했다. 모든 게 다 쉬이 행복한 밤. 글쎄, 오늘밤 달빛 아래 빌고픈 소원 이란 게 다 뭐였지, 동그랗게 머릴 긁적이며 집으로 꿈꾸러 가는 길.






with love,

금빛




토요일 연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