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려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목숨을 내놓아도(刎頸) 아깝지 않은 사귐(交). 무슨 어마 무시한 사연이 있길래 목을 뎅겅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나 싶지만, 문경지교에는 의외로 훈훈한 두 충신의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무서운 얘기 안 나옵니다.
소양왕이 다스리는 진나라는 나날이 강성해지며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趙) 나라만큼은 뛰어난 재상 인상여와 용맹한 장군 염파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침공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조나라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었던 인상여와 염파는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한 채, 죽을 때까지 깊은 우정을 나누었는데 이 두 충신 사이에 있었던 일화에서 나온 고사가 문경지교입니다. 사실 이것도 원한이라기보다는 염파 장군이 잠깐 토라졌다가 바로 뉘우친 것에 가깝습니다.
에헴. 잘난 척을 위한 한 걸음 더..
조나라의 사신 인상여는 진나라의 소양왕에게 빼앗길 뻔한 보물, *화씨지벽을 무사히 빼내 오는 데 성공합니다. 조나라로 돌아온 인상여는 이 공으로 큰 벼슬을 받았습니다만, 엉뚱한 곳에서 불똥이 튀며 일이 좀 꼬입니다. 인상여가 자신보다 더 서열이 높은 재상이 된다는 소식에 대장군 염파가 크게 노한 것입니다. 조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줄곧 최전선에서 싸워왔던 염파 입장에서는 화를 낼 만도 하죠. 게다가 당시의 벼슬은 능력만 있다고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는지가 능력보다 더 중요했던 시대라서, 지금의 기준으로 염파의 역정을 나무라기는 좀 어렵습니다.
한편, 염파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인상여는 슬금슬금 염파를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피해 다니는 정도가 좀 심하다 보니, 인상여를 수행하는 신하들이 더 민망해하며 인상여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인상여는 지금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과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 둘이 싸운다면 진나라는 얼씨구나를 외치며 조나라를 칠 것이고, 그럼 조나라는 그대로 망하기 때문이라고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진나라 왕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던 내가 설마 염파를 무서워하겠냐는 말도 곁들였지요.
그 소식은 전해 들은 염파는 자신이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 즉시 깨달았습니다. 윗옷을 벗은 채 매를 한가득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을 찾아간 염파는 자신을 벌해 달라고 엎드려 청했습니다. 깜짝 놀란 인상여는 한걸음에 달려 나와 염파를 맞이했고, 염파의 솔직하고 깨끗한 사과에 감동해 깊은 친교를 맺게 되니, 이를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사귐 - 문경지교라고 합니다.
* 화씨지벽 : 훗날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뒤, 전국옥새를 만들었습니다. "완벽"하다.. 할 때 그 완벽이 이 화씨지벽에 얽힌 고사에서 나왔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