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려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비단(錦) 옷(衣)을 입고 밤길(夜)을 다니다(行). 제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도 밤에 돌아다닌다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금의야행 자체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헛된 노력을 말합니다만, 원래는 전체 흐름을 보지 못하고 사사로운 일에 집착해 큰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꼬집는데에서 출발했습니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두고 다투던 때의 일로, 항우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여러 일화 중 하나입니다.
항우는 진나라를 친 뒤, 자신의 근거지인 팽성을 새로운 수도로 삼으려 했습니다. 항우의 가신들은 나라를 안정시키려면 물산이 풍부하고 방어에 유리한 관중을 수도로 삼아야 한다고 간곡히 말렸지만, 항우는 비단옷을 걸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부귀해진 자신을 자랑하고 싶다는 이유로 끝내 동쪽 끝자락의 팽성을 수도로 고집했습니다. 몇년 뒤, 항우를 치고 천하를 잡은 유방은 새로 도시를 건설해 수도로 삼았습니다.
에헴. 잘난 척을 위한 한 걸음 더..
항우는 뛰어난 장수였을 뿐, 여러면에서 나라를 경영할 그릇은 아니었습니다. 진나라를 치고 천하를 잡은 항우는 진나라에 대한 분노를 터트려 수도인 함양을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이미 대 제국의 수도로 개발된 도시가 폐허가 되었으니, 새로운 수도를 정해야 했습니다. 이때 항우는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느냐며, 진나라의 보물과 미녀들을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팽성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항우의 고향일뿐, 팽성은 동쪽 끝에 위치한 터라 제국의 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새로운 나라의 수도로 삼는 것이었으나, 함양은 항우 스스로가 불을 질러 파괴해 버렸습니다. 따라서 항우의 가신들은 물산이 풍부하고, 인구도 많으며, 사방이 산으로 막혀 방어에도 유리한 관중에 도읍할 것을 간했습니다. 하지만 항우는 고집을 꺽지 않았고, 이 모습을 답답해 하던 간의대부가 항우를 갓쓴 원숭이에 비유하자, 항우는 끔찍한 방법으로 간의대부를 죽인 뒤 기어이 팽성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어째서 항우가 패망했는지 짐작해 볼수 있는 일화입니다.
훗날, 항우를 친 유방 역시 똑같은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유방 역시 처음엔 함양을 생각했지만 함양은 너무 많이 파괴되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나라의 중심부를 떠날 수도 없는 일, 결국 폐허가 된 함양 대신 약간 남쪽에 새로운 도시를 세워 수도로 삼았는데, 그 도시가 바로 장안입니다. 관중 지역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른 장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낙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시로 성장했고 한나라 이후에도 여러 왕조의 수도로 번영했습니다.
* 관중 : 관중 평야를 중심으로 산맥과 강으로 둘러 쌓여 있는 중국 서부 지역을 말합니다. 함곡관 동쪽은 중원, 서쪽은 관중으로 나뉘는데 '관중을 잡는 자가 천하를 잡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인구도 많고 교통도 나쁘지 않으면서 방어에는 유리한 지역입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