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이번 달 카드값 같은 거다. 그러다 ‘아이씨... 이렇게 살려고 했던 건 아닌데’에 지쳐서 획기적인 변화를 꿈꾸게 된다.
직장생활 하면서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 시험에 합격한 사람, 심지어 로또 당첨이 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일상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언가를 해야겠지만 뭔지 잘 모르는 틈을 사이로 노오력의 자기개발서 판매 부수에 기여를 한다. 지난 나의 일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변화는 찰나의 우연과 노력이 겹쳐 일어났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 같지만 나의 하루들은 어떤 특별한 순간으로 바뀌기도 했다.
학교-집, 대한민국 스탠다드 일상을 거치며 나는 제법 괜찮은 테크 트리를 타고 있다고 김치국물을 마시다가 집-회사 코스에서 만회 해보고자 개천에서 돈 좀 내 볼려고 ‘미쳐야 미친다’ 식의 막무가내 노오력으로 일상을 보낸 적이 있다. 1년차에 대기업 간 친구들과 비교를 하며 그래도 선방한 연봉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근무시간을 나눠보니 당시 편의점 시급보다 몇 백원 많은 수준이여서 놀랐었다. 무한경쟁, 세계경영에서 버틸려고 지하철에 서서 졸면서도 보던 자기개발서와 영어공부, 일주일에 7일 회식을 하면서 ‘we are famliy’를 10년을 외치며 살았다. 그러고 남은 건 비대한 허벅지에 가랑이가 닮아 없어진 바지와 선채로 보이지 않는 발이였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무모한 용기를 내는 순간 우연처럼 오기도 한다. 불안에 떨던 서울 컨베이어벨트 일상을 타노스 핑거 스냅처럼 없애버리고 나니 거짓말처럼 여유가 몰려 왔다. 회사에서의 정체성을 점점 벗어 버리고 아빠, 남편의 지분이 더 커졌다. 또 나에게도 시간을 내어주게 되니 자연스럽게 ‘살만한 일상’이 생겼다. 꾸역꾸역 읽던 업무 관련 서적은 밀어 놓고 쓸데없이 위하여만 외치며 서로를 위하지 않던 사회생활도 내려 놓게 되었다.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쌓아 놓고 읽고 밤새 게임을 하고 리마스터 된 애니를 실컷 보고 수 있게 되었다. 부담이 없으니 일은 쉬워졌고 내가 쉬우니 남들도 쉽게 받아 들였다. 남는 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갈지, 할지를 즐겁게 찾아 보고 함께 하고 그런 일상을 보내고 나니 아침에 눈 뜨는 것이 즐거운 날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삶이 그리 만만치는 않아서 텅장과 할부와 육아, 엄빠의 건강과 명퇴 불안 등을 남겨 놓았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듯이 걱정은 닥쳐서 해도 절대 늦지 않다. 살던 대로 살아지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지지도 않지만 쌓이면 좋을 만한 것들을 반복하는 하루들을 이어 가는 이 일상들을 좀 더 누려봐야 겠다. 썻다 지워지지 않는 하루지만 괜찮다. 내일은 조금 더 괜찮아 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