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된 딸들- 나의 두 딸들의 이야기- 날 닮지 않은 딸
닮았다. 아주 괴로울 정도로 닮았다. 매일매일 뺏기지 않으려고 으르렁대는 개처럼 지켜야만 했다. 문을 나설 때마다 어린 나의 딸을 지우고 있는 바깥으로부터 딸의 순수함을 지키고 싶었다. 나의 과거는 나의 딸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 너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주 작고도 작은 일에도 잔소리가 길어지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있는 너를 윽박지르게 되는 나는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나를 포기했었기에 너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애정이라는 말로 너를 가두고 있는 아빠는 아직 너를 더 키우고 싶을 뿐이다. 아직은 어린 나의 첫째 딸 이윤아!
가느다란 머리카락으로 가린 단단한 벽은 뾰족한 내 눈빛으로는 뚫을 수가 없었다. 목소리는 들리지만 얼굴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 아래로 위로 옆으로 본다. 눈을 마주 보며 인사하며 학교 가는 모습은 사라지고 분홍빛으로 물든 너의 볼을 훔쳐보게 될 뿐이다. 낯선 어른의 향기가 닫힌 문을 마저 나가지 못하고 창문 틈으로 나마 '회사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는 것 같다. 남자친구는 없다고 했지만 이성에 대한 호감은 벌써 있었으리라. 아침마다 차려진 아침밥을 서서 입속으로 쑤셔 넣을 만큼 부족한 시간에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하지만 아빠는 아직은 모른 체 할 수가 없단다. 너의 지금이 아빠의 과거였기에 화가 난 것이다. 너의 선택을 아직은 믿지 못하는 스스로가 싫어서였음이 더 크다고 고백하고 싶다.
벽에 그은 까만 선이 눈높이에 가까워졌을 때 예감 했었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을 보더라도 오늘 봐야 할 책이면 꼭 넣고 다녀서 짓눌린 어깨는 가늘고 좁아 보이기만 하는데 하나도 빠트리지 않는 책의 무게에 매달려 있는 가느다란 팔을 보고 있자니 측은하면서도 체력을 키워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미안하다. 체력이 있어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시기가 너에게 닥쳐왔으니 버티지 못한 아빠의 후회가 너에게 잔소리로 토로하게 될 뿐이다. 운동이라는 걸 할 시간이 없으니 햇빛에 그을린 적 없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네가 얼마 전 체육대회 때 반대표 달리기 선수가 되었다는 말에 역시 내 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단다. 아침마다 폼롤러로 세상의 편견을 긁어내려고 애써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너의 굵은 다리는 내 것이 아님을 너의 엄마와 이모들을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느려터진 너의 달리기가 반대표가 된 건 어쩌면 길지만 굵은 다리에서 오는 선입견으로 인해 뽑힌 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 보기도 했단다. 1등을 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아빠인 나에게 너를 칭찬하며 1등임을 강조해 줄 때 그 으쓱함은 하늘을 뚫었지만 저 깊고 깊은 땅 속 깊숙이 뿌리내려야 하는 너의 엉덩이는 점점 더 처지고 퍼지고 있음을 알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단다.
학교 폭력을 당한 친구와 행한 친구들 사이에서 무엇이 옳고 그름을 어른들의 세상에서 바라보며 조언해 준 아빠가 아직도 한심스럽기도 한단다. 올바른 결정을 스스로 한 너를 보고 선택의 기로에서 갈림길의 신이 나타나 주길 바라던 어릴 적 아빠와는 다른 다 큰 딸을 보게 되니 흐뭇하지만은 않단다. 어른스럽다는 말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가름할 수 있는 단호한 성격을 가졌음은 좋지만 살아보니 그 단단함은 더 단단함에 맞서 부서질 때까지 부딪치게 되고 깨질 때까지 부딪히더란다. 나의 과거 나의 딸 나를 닮은 이윤아! 너의 옳은 선택마저도 이렇게 말해야 하는 아빠를 용서하길 바란다. 너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가식을 내세워 이렇게 오늘도 잔소리만 늘어가는구나. 그럼 이만. 밤에 보자. 스마트폰은 적당히 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