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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다.

비우고 채운다- 내 멋대로 레시피 '양배추전'

by Goldlee

주말이면 계획이란 게 왜 쉽게 사라지는지 알고 싶지 않지만 배고픔은 알게 해 준다. 나는 주말이면 게으르다. 먹고 배를 채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음식을 쌓아 두지 않는다. 집에 밥이 없다. 라면도 없다. 결정적으로 이성적이고 냉정한 내 친구인 냉장고는 빵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절교하고 싶다. 배고프면 친구가 필요 없어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허나 채 썰어 둔 양배추는 있다. 이럴 줄 알고 양배추를 남겨 두었나 보다. 근데 거무티티하다. 갸우뚱 거리는 고개를 킁킁대는 코가 어제 썰어 둔 거니 괜찮다고 위안한다. 선반 유리병에 담긴 밀가루가 보인다. 하얗다. 이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이제부터 내 요리가 시작된다.

은빛이 아직은 조금 남아 있는 스댕후라이팬을 예열한다. 기름을 두르면서 '이번에는 꼭 먹고 저 때를 박박 문질러 벗겨내야지.'라고 생각한다. 거무티티한 양배추로 은빛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게 덮어버린다. 그리고 소금을 치고 아침에 물 마시던 머그컵에 하얀 밀가루 두 숟가락을 넣고 배고프니까 조금 더 넣어 준다. 수돗물 틀어 대충 물 넣고 긴 나무 젓가락으로 열심히 휘젓는다. 열심히 젖다 보면 뭔가 아쉽다. '고기 같은 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냉장고 저 안쪽에서 손을 번쩍 드는 형님 같은 '햄'님이 나타나신다. 도마를 내리고 칼을 집어 들어 그 숭고한 몸뚱이를 얇고 정교하게 썰어 후라이팬과 싸우는 양배추를 지원하러 출격한다.

'아! 희생정신이란!'

서로 엉겨 붙어 진이 빠지고 숨이 빠졌을 때 밀가루 반죽을 부어 그들에게 잠시 휴전을 허락한다. 최전선에서 싸우던 양배추는 이내 마지막 숨을 거두고 지원 나간 햄님도 상처 투성이다. 밀가루 반죽은 모두를 어루만지며 하나 되기를 원했지만 갑자기 뛰어 들어온 계란은 후라이팬을 흥분시켰다. 뒤집었다. 반전을 꾀해 보지만 찢어진 그들은 노랗게 전사하고 말았다.

뒤집게는 있어도 뒤집히는 전은 왜 매번 찢어지는 건지. 알고 싶지 않지만 뒤집고 나면 그 노르스름한 색깔은 은 그저 맛있을 뿐이며 전쟁의 상처도 잊게 해주는 것 같다. 냄새도 노랗다. 후추 듬뿍 뿌려준다. 내 요리를 믿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후추이다. 번뜩인다. 케첩과 마요네즈의 참전을 이제야 요청한다. 큰 접시에 옮겨 담은 양배추전 위에 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리려다가 옆에 대충 짜 놓는다. 이건 '전'이지 '오코노미야키'를 만들려고 한건 아니니까!

"맛있다."

전 장사할 계획을 세운다. 광화문에서 먹었던 빈대떡집이 생각난다. 두 번째 전도 먹어본다.

"아! 장사 못하겠다."

붉은 불.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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