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한 어린이인척 할 수 있게 해준, '책'과의 처음

1. 책(물욕) (1)

by 금달


시작부터 독서가 나왔다. 서론을 읽은 당신이라면 사실 어처구니 없을 수 있다.

‘뭐야 너 새로 생긴 취미가 독서라며?’


정확히는 아주 어린 날의 내가 가진 취미였다가 최근에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내 기억의 시작, 추억의 시발점에는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주택가 사이에 있던 작은 도서관이었는데, 1층은 도서관, 2층은 노인정? 3층은 (작은 도서관에서 관리하는) 독서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서관 이름은 ‘장미골 도서관(가명)’으로 하자.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어떤 장소에 가던 손에 책 한권 쥐어주면 얌전히 앉아 책을 읽던 어린이였다고 한다. 기억 미화일 수도 있지만 내 어린 날의 기억에도 ‘장미골 도서관 (이하 장미골)’ 혹은 근처 구립/시립 도서관, 그것도 아니면 학교 도서관에 갔던 기억들이 생생한 것을 보면 아주 거짓은 아니었을 것 같다. 여하튼 나에게 그곳은 좋은 놀이터였다. 아마 자원봉사자 어머님들이셨을 것 같은 아주머니들께서는 학교가 끝나면 장미골로 신나게 달려가는 나를 반겨주셨고, 거기서 나는 ‘초등 고학년을 위한 추천도서’ 따위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마법천자문 (요즘에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신간 신청을 열심히도 했었다. 그 때만 해도 한 번 본 만화책을 다시 보진 않았으니, ‘만화를 엄마가 사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 + 한 번 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소장 욕심까지는 없었던 마음’이 합쳐져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안을 잘 찾아냈던 것 같다.




장미골에 열심히 드나들 때 앞서 말했듯 나는 버스 타고 10~20분 거리에 있던 구립도서관에도 매 주말마다 엄마와 함께 다니고 있었다. 나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 하나 있는데,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여기 저기 열심히도 다녔었다. 안타깝게도 기억하는 장소는 몇 없지만 - 그 때의 기억 덕분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내가 도서관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리라 확신한다.


여하튼, 도서관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도 열정적으로 신청해서 다녔고 그 프로그램 시간 앞뒤에 구립 도서관 내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빌리는 습관이 생겼다. 보통 만화책을 도서관 내에서 읽고 줄글로 된 문학들을 빌려갔던 것 같다. 만화책이 크고 무거워서 만화를 빌려가면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들고 다니던 도서관 카드의 가치가 현재의 주민등록증보다 더 큰 것 같다. 신분증 사용의 8할은 술자리이기 때문에 ^^...)


그렇게 책을 빌릴 때 퉁-퉁-거리던 기계의 울림과 삑삑 바코드를 찍으면 올라가던 책의 목록은 아직 그 책을 펼쳐보기도 전인 나에게 이미 다 읽은 것 같은 성취감과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그 때의 내가 읽던 책들은 문학에 편중되어 있었는데 ‘청소년 문학선’ 같은 것들을 꽤나 좋아했다. 보통 내가 책을 고를때는

① 책 뒤 표지의 줄거리를 읽어본다.

② 줄거리가 마음에 들면 책을 펼쳐서 글자 크기를 확인한다.

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책의 글자 크기란 그 당시 나에게는 나의 ‘독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였다. ‘이 정도 글씨로 된 이만한 두께의 책이면.. 읽을 수 있겠네!’ 따위의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었지. 문제는 그 기준이 나이를 먹어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어린 나는 아직 내가 ‘어려서’ 읽지 못하는 책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조금 더 시간이 들면 읽어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알아버렸다. 나이가 든다고 독해력과 문해력이 자연스럽게 느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릴 때 어려워서 못 읽은 책들은 보통 나이가 들어도 똑같이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20대 중반이 되도록 유명한 명작들의 대부분을 손도 대지 못한 사람으로 성장해버렸다.




20대 중반이 되도록 독서 수준이 10년전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는 잠시 뒤로하고, 여하튼 그렇게 독서에 입문한 나는 초/중/고 11년 내내 학교 도서실 사서 선생님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왜 11년이냐고? 빠진 1년은 암흑의 고3 시기이다. 물론 고3이어도 가끔 공부가 하기 싫을 때 도서관을 찾곤 했지만.. 그건 정말 독서를 한 게 아니라 일종의 도망이었기 때문에 양심껏 제외했다.) 특히 별관에 도서실이 있던 고등학교와 달리, 초/중학교는 1층에 도서실이 있었기 때문에 등하교 할 때 한 번 씩 들러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나의 루틴이 되었다. 당시 학교 도서관에서 암암리에 인기 있던 책들은 주로 일본 작가의 – 주로 약간의 야시꾸리한 내용이 있는! - 책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몽글몽글 예쁘기만 한 내용들이 그 당시 어린이들에겐 꽤 자극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끼리 그 책 재밌다며 서로 공유하던 기억이 퍼뜩 머리를 스쳐지나가 헛웃음이 나온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을 오래 다녀서일까, 나는 자연스럽게 청구기호를 보고 책을 찾는 법을 익혔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검색대에서 검색해보고 인쇄되는 작은 영수증 종이를 들고, 어린 나는 높은 책장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곤 했다. 가끔 욕심을 부려 최대 대여 권수에 꽉 차게 책을 들고 가던 날에는 (내 책을 대신 들어야 했던) 엄마가 다음 주까지 다 읽어야 한다며 나에게 으름장을 놓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언젠가는 느닷없이 ‘책 소장’에 물욕이 돌아서 책을 사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내 책’이라는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책의 윗등에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 참고로 이 행위는 현재의 내가 뼈아프게 후회하는 것이다. 다시 보지도 않는데 이름을 적어놔서 중고로 판매도 못 한다고!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자기계발서 위주로 구매하다가 문득, 나 이제 고등학생인데 수준 높은 책 좀 읽을 때 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단테의 ‘신곡’을 냅다 구매해왔다. 그 와중에 자기객관화는 잘 되어서 상-중-하 세 권 중 2권만 사온 게 기특하달지. 그 유명한 세계문학전집! 이제 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펼친 책의 페이지는 구매한지 n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30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성인이 되고 몇 차례 트라이를 해보았으나 장렬히 실패했다. 20대 중반이 되도록 독서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이야기의 근거가 되었달까? 뭐.. 그래서 어쩌다보니 <단테의 ‘신곡’ 완독>이 나의 1차 독서 목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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