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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Sep 29. 2016

대장군 한신(韓信)의 인생을 가르는 선택

전략가와 창업가의 차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 아는 이야기는 이렇다. 

초나라楚와 한나라漢가 천하를 놓고 다투다가 결국 한나라가 천하를 얻고,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400년 국가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초한지楚漢誌다. 


많이 부각되진 않았지만, 초한지에서 의외로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초한지의 이야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결정적 부분, 역사의 가정은 없지만 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뻔했던 크리티컬한 순간이 있었다. 이 이야기가 완성되었더라면 초한지가 아니라 삼국지三國誌가 될 터였다. 


그것은 대장군 한신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결정적 찬스였고, 이 한 번의 미스로 한신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대장군 한신

동서고금을 꿰뚫는 전략의 기재이자 백전백승의 장군 한신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한신의 출신은 비천하였다. 

빨래터를 왔다갔다 하던 한 여인이 매번 굶고 있는 한신을 보며 주먹밥을 주었다. 비록 처지는 곤궁하지만 큰 포부와 재능을 갖고 있던 한신이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하며 여인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맙소. 내 비록 지금 주먹밥을 얻어먹고 있으나 후일 성공하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소"

그러자 아낙이 말했다.

"웃기지도 않네요. 그냥 매번 불쌍해 보여서 주먹밥을 준 것인데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시오"


그 다음 에피소드는 더욱 유명한 이야기다.

한신은 무인의 기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비천하나 항상 검을 차고 다녔다. 그러나 가난에 행색이 초라하고 볼품없어서 사람들이 무시하기 일수였다. 하루는 시장을 걸어가다가 시정 불량배들과 마주쳤다. 불량배들이 볼 때에는, 행색이 영 초라한 것이 꼴에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여간 아니꼽지 않았다. 수적으로 우세했던 불량배들이 한신에게 시비를 걸었다. '네가 대장부처럼 칼을 차고 다니니, 어디 얼마나 대장부인지 보자.' 한신에게 가랑이 밑을 기라고 이야기했다. 훗날 신출귀몰한 전략과 전술로, 만군을 지휘하여 천하를 호령할 대장군 한신은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서 목숨을 부지했다. 한신이 필부의 용기로 칼을 뽑고 휘둘렀다면, 대장군 한신은 역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과하지욕*의 어원이다. 


진秦나라를 멸하기 위해 각국에서 군사를 일으키는 난세가 찾아왔다. 난세는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가장 명망높고 잘 나가던 항우項羽의 휘하에 한신은 들어간다. 그곳에도 한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일개 집극랑이라는 하급법무의 일을 맡게 된다. 항우의 참모이자 지략가 범증范增이 한신을 중용하지 않으면 죽여서 후환을 없애라고 간언하지만 엘리트 코스만 걸어온 항우에게 출신이 비천하고 볼품없는 한신은 그저 필부에 지나지 않아보였다. 항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과연의 범증의 말대로 항우를 멸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바로 대장군 한신이었다.


항우보다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항우와 달리, 소하蕭何, 장량張良, 진평陳平, 번쾌樊噲 등 우수한 인재들을 포용하고 적절하게 다룰 줄 알았던 한고조 유방은 한신을 어떻게 보았을까? 유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고 초나라를 탈출하여 험한 파촉巴蜀으로 찾아온 한신을 말단 하급관료로 배치했다. 한신도 참지 못하고 떠나려고 했었지만 절대적 신임하던 장량의 추천서를 보고서야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상황이 좀 좋아질 때는 대장군 직함을 도로 빼앗아 왕족출신이자 용모가 뛰어난 위왕魏王 위표魏豹에게 주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장량은 한신을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비범한 지략가 장량이었지만 초나라의 말단관료 한신을 알아본 것은 우연적이었다. 그가 한신을 만난 것은 초군영을 배회하다 우연히 들려온 노래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직한 곰이 산에 내려와

개미를 집어삼키려다가

목에 걸려 기침이 나도다

아아 위태로워라 위태로워라


한신의 비범함을 알아챈 장량은, 희대의 기재 한신 모시기 작전에 돌입하였고, 갖가지 지모를 활용하여 그를 한왕에게 가게끔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대장군으로 임명된 한신은, 기가막힌 전략으로 파촉을 빠져나와 삼진三晉을 멸하고 함양咸陽을 점령한 뒤, 마침내 초패왕 항우의 초나라와 일전을 벌이게 된다.


장기게임은 초한지쟁을 담고 있다.


정족지세 鼎足之勢

의제시해사건을 필두로 하여, 대의 명분을 부르짖으며 파촉을 나와 초나라와 겨루는 한나라지만, 전국 각지에는 제齊, 조趙, 위魏 등 6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왕들이 있었다. 이들이 항우의 편에 붙느냐, 유방에 편에 붙느냐에 따라 천하의 주인이 결정날 판국이었다. 

탁월한 세객說客 장량의 외교적 수완으로 많은 지역들이 한왕 유방에게 복속해온 것은 한나라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한나라는 압도적으로 강했던 초나라와 대등히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특히 한신 못지않은 명장 팽월彭越과 구강왕 영포英布가 유방편으로 돌아선 것은 대단히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많은 제후국들이 한나라에 붙었다, 초나라에 붙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제후국들은 어느 편에 줄을 서야할지 몰랐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어느 편을 가담하느냐에 따라 초한의 자웅이 결정날 일이었다. 


한나라와 초나라가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다른 제국들을 포섭하거나 복속시켜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한신은, 다시 배반한 위나라를 평정하고 돌아온 뒤, 곧바로 대주代州, 조趙나라, 연燕나라 제齊나라를 차례로 점령하기 위해 장도를 떠난다. 한신이 없는 유방은 항우와 대결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위기를 맞기도 하면서도 전선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한신은 마침내 마지막인 제나라마저 점령에 성공한다.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명망있는 제후국 중의 제후국이었다. 한신은 본인이 제나라를 점령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하고 있을 무렵, 모사 괴철蒯徹은 한신의 마음을 읽고 한왕에게 이야기하여 제왕의 자리에 대해서 확답받아 놓으라고 한다.

본디 한신은 생각이 깊은 자였지만, 미천한 출신이었던 본인이 제나라의 왕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자 한왕에게  서신을 보낸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나라를 수습하고 완전히 복속시키기 위해서는 왕 자리를 비워둘 수가 없으니, 이번의 공로를 치하하시어 본인을 제왕으로 임명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초나라의 지속적인 공세에 대응하고 있던 한왕은 한신의 서신을 받자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 한은 초국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고 고초를 겪고 있는 시기를 틈타, 본인의 잇속을 챙기려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이다. 장량과 소하도 해당 서신을 보고는 무척 놀랐지만, 한신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천하통일을 위해서는 한신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신은 현재 제나라에 눌러앉아 움직이려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유방에게는 무언의 압박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지략가 장량은 한신을 오히려 삼제왕三齊王으로 봉하게 하고 빨리 한왕을 돕도록 출병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서쪽전선에서 한왕 유방의 본군이, 동북에서 제왕 한신이, 남쪽에서 구강왕 영포가 이렇게 세 방향에서 항우를 공격하여 초를 멸하는 것이 유방측의 전략이었다. 


한신이 제나라를 정벌하고 초의 용장 용저龍且마저 쳐부수자, 항우는 그제서야 한신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우의 사자가 한신을 찾아온다. 사실 항우의 입장에서는 한신만 없다면 유방은 자신의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한신을 포섭하고자 밀사를 보낸 것이다. 

항우는 옛날 같이 일했던 정을 생각하여, 다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던진다.

한신은 항우의 사자에게 이렇게 외친다. 

"항우는 나를 일개 하급관료로 취급하였지만, 한왕께서는 나를 알아봐주시고 대장군까지 임명하셨던 분이다. 염치를 안다면 썩 돌아가라!" 


연나라에 이어 조나라, 제나라까지 제압한 한신은 어느새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해있었다. 그 세력은 유방이 보유하고 있는 세력과 항우가 거느리는 초군과 가히 맞먹을 수 있는 세력이 되어있었다.  


홍문의 연


괴철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

초나라 사신이 물러나자, 괴철은 한신을 찾아와서 기막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모사 괴철蒯徹의 말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지금 폐하께서는 제왕에 오르시고 그 세력이 부풀어 올라 가히 독자적 세력을 구축해도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금 천하는 한왕 유방과 초왕 항우의 양자대결구도 속에 폐하(한신)가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천하는 한, 초, 제가 나눠서 세력균형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누구도 폐하를 적으로 둘 수도 없고, 한나라 역시 초의 움직임이 두려워 폐하를 공격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럴 때에 폐하께서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시어 양쪽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면, 한, 초, 제 3국으로 천하 정족지세를 만드시어 기반을 다지시고, 나아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시거나 적어도 천하의 삼분지일은 가지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한신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한왕을 위해 많은 전공을 세워왔고 한왕은 그 때마다 나의 지위를 높여주었고 고깝게 여긴 기색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 관후한 한왕을 어찌 배반하고 돌아설 것인가. 한왕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나를 대장군으로 임명해주신 분이다."


괴철은 다시 말한다. 

"폐하, 한왕은 폐하의 환심을 사려고 부랴부랴 삼제왕에 봉하고 심지어 많은 영토까지 주었지만 그것은 본심이 아니오라 폐하의 힘을 빌려 항우를 정벌하기 위한 계략임을 아셔야 합니다. 유방이라는 인물은 항우가 제거되고 나면 그때에는 반드시 장군을 살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재화를 당하지 마시고 영화를 누리시옵소서!"

과연 괴철의 통찰은 옳았다. 유방은 나중에 한신에게 3가지 죄가 있다고 했다. 첫째, 수수대전에서 참패했을 때 도와주려고 달려오지 않은 것. 둘째, 유방이 성고성에 포위되어 있을 때 실정을 알면서도 달려오지 않은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방이 곤경에 빠져있는 때를 이용하여 제왕의 자리르 강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신은 기로에 빠졌다. 

천하의 주인이 되어보느냐, 아니면 지금 제왕으로 만족하느냐. 위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고 삶을 건 도박이 될 수 있다. 장부로서 칼을 품고 대해로 나아가느냐, 안분지족을 알고 영화를 누리느냐. 결정적 순간이었다.

"알겠소. 나에게 생각할 며칠의 말미를 주시오."

한신이 며칠을 고민하였다. 


그러자 괴철이 참지 못하고 다시 간언을 올린다. 

"어찌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옵니까? 기회라는 것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고, 게략을 꾸미는 것은 반드시 사태가 무르익을 때라야 하는 법입니다. 쓸데없는 의리에 현혹되어 유리한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오히려 백가지 화를 초래할 뿐입니다. 만물의 성패는 반드시 시기에 달려있는 법이니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소설에서는 마침 한왕의 사신으로 와있던 육가陸賈가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육가는 한신이 돌아설까 두려웠고 괴철을 힐난하며 한신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왕께선 괴철의 요언에 현혹되어 인신의 절개를 배반치 마시옵소서,

모든 사물을 정확히 바라보려면 실세와 외형을 올바로 봐야합니다. 초나라는 강성해 보이나 실은 허약하기 짝이 없고, 한은 반대로 외형은 약해보이나 놀랍도록 강한 편이지요. 제왕께서는 세력이 갑자기 커지긴 하였으나 아직 기초조차 없지만, 한왕은 민심을 등에 업고, 장량 한신 소하 번쾌 뿐 아니라 팽월 영포 등의 무수한 인재들이 한왕과 함께 있습니다. "

육가는 한신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즉, 대장군께서는 기회란 없을 것이니 현혹되지 마시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한신은 육가의 말이 옳다하여 진정한 충언에 감사를 한다. 그러자 괴철은 부리나케 문을 박차고 나가 사라졌다. 자신이 모반죄로 체포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신이 군사를 일으켜 항우를 치러 출정할 때, 괴철이 다시한번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신은 거절하였다. 한신의 말은 이러했다.

이제 내 결정을 번복하면 한왕이 지시한 군명을 배반하는 죄를 짓게 되고, 장량이라는 친구의 신의 배반하게 되고, 한왕의 은혜를 부덕으로 갚는 불의를 저지르게 된다면서, 

"내가 비록 제왕의 자리를 유지한다 하기로 변방제후들이 얼마나 비웃을 것이며, 후일에 공의 말대로 커다란 재화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그런 배은망덕은 못하겠소."

위대한 전략가이지만, 순진한 한신이었다. 전쟁의 신으로 여겨지는 인물, 모든 전장에서 백전백승을 거두고 6국을 정벌하던 대장군 한신. 그는 여기서 그만 괴철의 천하삼분지계를 마지막으로 기각시킨다. 한신은 그 한번의 오판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위대한 전략가였지만, 그는 결코 창업자는 아니었다. 그는 그가 내린 이번 결정이 그를 죽음으로 몰지 몰랐다. 그는 죽기 직전에 괴철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우리가 한신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신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천하가 정리되자 한신은 삼제왕에서 초왕으로 다소 강등되었다가 종리매鍾離眜 사건으로, 회음후淮陰侯로 봉해졌다. 대장군으로서 누구보다 항우를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한신이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작은 보상을 받았다. 한신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란 한번 지위에 오르고 나면 다시는 내려올 수 없는 법이다. 한신은 불만이 쌓이고, 한신의 존재는 유방에게 두려움이다. 결국 한신은 유방에게 죽음을 당한다. 


高鳥盡良弓蔣  새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은 내동댕이쳐지고

狡兎死走狗烹  토끼사냥을 하고 나면 개는 삶아먹히게 된다


한신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한마디 내뱉었다.

"내 일찌기 괴철의 말을 듣지 않았더니..."



* 윈도우에서 제공하지 않는 한자여서 한자를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커버이미지에 과하지욕의 한자가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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