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버티는 마음의 기록
나는 늘 ‘골골’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깡마른 몸, 창백한 얼굴, 힘없는 걸음걸이까지.
고등학생 때 나는 ‘병든 병아리’라 불릴 만큼 허약했다. 감기와 배탈은 내 몸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고1에는 위경련으로 생애 첫 위내시경까지 했다. 내 위는 나보다 먼저 사춘기를 앓았다. 학교 앞으로 오던 헌혈 버스는 늘 체중 미달로 나를 돌려보냈고, 친구들이 받는 문화상품권을 부러워하던 날들은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는 사이 ‘멀쩡한 날’이라는 것은 달력 한가운데 별표로 남겨야만 기억되는, 드문 사건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은 조금 멀쩡해 보였지만, 마음은 더 자주 고장 났다. 감기엔 약이 있었지만 마음의 통증엔 매뉴얼이 없었다. 무덤덤하던 나는 감정의 최고점과 바닥을 오가며 지냈다. 최고점일 땐 며칠 밤을 새워도 멀쩡했지만, 바닥일 땐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키는 일조차 큰일이었다. 몸무게가 줄며 갈비뼈까지 드러났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 좋겠다”라고 가볍게 말했다. 나는 늘 속으로만 대답했다. “딱 한 달만 살아보세요. 이 몸, 금방 벗어던지고 싶어질 겁니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이러면 안 된다’라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고장이 나면 “아, 또 맛이 갔군” 하며 그냥 고장 난 채로 둔다. 미련 없이 “오늘은 휴무일!”을 외치고 이불속으로 숨는다.
사람들은 끈기로 달리고 꾸역꾸역 걸어가는데, 나는 꾸역꾸역 도 못 해서 걷다가 내 발에 걸려 자빠지는 쪽이었다. 예전엔 넘어질 때마다 상처 하나 없는데도 이상하게 더 아파 억울했다. “넘어졌으면 멍이라도 있어야 덜 억울하지 않나?” 하고 투덜대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면 2차 사고 난다길래, 그냥 누운 김에 한숨 자버린다. 그게 은근히 괜찮다.
나는 근사한 문장보다 솔직한 한숨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글이 안 써지는 날엔 커피가 묵직하게 식을 때까지 커서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허공에 대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아. 뭐 어때. 이름부터 ‘골골’인데.” 약해서 붙은 이름이었지만, 요즘은 그 이름에 은근히 기댄다. 골골하긴 해도… 뭐, 이 정도면 귀엽지 않나.
완벽히 건강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간신히 버티는’ 사람만의 섬세한 기술이 있다.
이 연재는 그 기술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내 몸과 마음을 배신하던 감기, 배탈, 불안과의 기묘한 동거부터, ‘오늘은 쉰다’고 선언하며 얻은 의외의 평화, 그리고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내며 발견한 작은 기쁨들까지. 비어 있는 순간들을 허용하며 비로소 배운 숨의 리듬을 글에 담아보려 한다.
완전한 건강은 내 차례에 한 번도 오지 않았기에, 나는 건강의 정의를 내 멋대로 바꾸었다. 아무 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파도 버틸 힘이 남아 있는 상태. 하루를 버티는 것도 운동이고, 글쓰기도 일종의 명상이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유효기간 없는 변명을 건네며 한 줄을 쓴다.
훌륭한 하루가 아니더라도 간신히 하루를 견딘 그 사실만으로 충분히 잘했다고 말해주는 글. 그런 글이 오늘을 버티는 누군가에게 가볍게 내려앉아, ‘그래, 나도 오늘은 이 정도면 됐어.’ 하고 미소를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골골거리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