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라는 완벽한 파트너와 이별하기까지
직장을 그만둔 뒤 내 시간은 건전지 하나 빠진 시계처럼 멈춰 있었다.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첫 직장에서 방대한 업무에 압도되었고 교대근무 속에서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내 몸은 매 순간 재난 문자를 보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이러다 익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도망치듯 퇴사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몸을 짓누르던 책임감과 부담감은 새로운 형태로 변해 나를 방 안 깊숙이 가두었다. 회사에서도 만나지 못한 완벽한 파트너를 집에서 만났다. 유일하게 나를 품어준 존재, 침대였다. 나는 그렇게 파트너와 생명력을 맞바꾸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해가 지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해가 뜨면 오늘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일어나야 한다는 의무감에 몸을 일으켜보았지만, 보이지 않는 고무줄이 나를 제자리로 끌어당겼다. 그 장력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대부분의 밤이 잠들지 못한 채 흘러갔고, 이 상황이 모두 꿈이길 바라며 감은 눈을 뜨지 않고 버티기도 했다. 푹 꺼진 침대에 누워 끝없이 재생되는 내 인생의 재방송을 보며, 시작하려는 마음도 함께 희미해졌다.
그날도 여느 날과 똑같은 날이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불쾌해 고개를 돌리다 문득 집구석에 위치한 냉장고와 눈이 마주쳤다. 문을 여는 순간, 곰팡이 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단순히 상한 음식의 냄새가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된 내 삶의 냄새 같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 살아있네? 이러다 고독사 뉴스에 나오는 거 아냐? 그래도 죽거들랑 육개장은 서울 맛집으로 해주는 거 잊지 마.” 예전에 친구와 종종 하던 농담이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햇빛과 냄새와 친구까지. 우연의 연속은 결국 나를 웃게 만들었고,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움직였다.
사라진 줄 알았던 자존심과 생존 본능이 반항하듯 피어올랐다. ‘이 무기력함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나는 떨리는 몸으로 현관문에 다가갔지만, 이상하게 선뜻 만지진 못했다. 며칠간 그렇게 문 앞에 섰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날도 괜히 세수까지 하고 그 앞에 섰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온도에 소름이 돋았지만, 이번엔 그대로 힘을 주었다. 나를 붙잡던 고무줄은 더욱 팽팽해지며 고통스러웠지만, 이 악물고 문을 열었다. 그때의 온도와 냄새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눅눅하면서 끝에 락스 향이 살짝 스쳐 가는 건물 특유의 복도 냄새가 나를 지나서 집 안으로 퍼져갔다. 낯선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옴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해방감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문을 열었구나. 움직였구나.’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와 함께 나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 한 걸음이 모든 것을 바꾸진 못했다. 다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고무줄은 여전히 모양을 바꾸며 때로는 불안으로, 때로는 후회로 나를 당겼다. 여전히 현관문을 열 때면 나는 심호흡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장력을 뒤로하고 내디딘 한 걸음이 다음 한 걸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그 작고 떨리는 걸음, 나는 그 한걸음을 나의 ‘시작’이라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