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딱 한. 칸. 만.
“아... 피곤하다.”
약속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보다 표정부터 먼저 벗어던졌다. 가면을 벗어낸 자리엔 축 처진 입꼬리와 짙은 다크서클만 남아 있었다. 다정은 체력이라 했던가. 그 말에 괜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애초에 체력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고, 그마저도 대부분 인간관계에 썼으니. 내 체력이 남아날 턱이 없었다.
대화 도중 찾아오는 짧은 침묵은 내게 재앙 예고편 같다. “지금 분위기가 싸해진 건 아닐까?”, “방금 한 말이 실수였나?” 같은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타인의 눈빛 하나에도 수십 개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사람들의 눈빛을 읽느라 하루의 절반을 쓰고, 남은 절반은 그 눈빛을 곱씹느라 보낸다. 상처 주지 않으려 삼킨 말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체한 듯 더부룩하기만 하다. 관계 속에서 나는 늘 만성 소화불량이었다.
관계의 계산서는 묘하게 불공평하다. 마음을 쏟아붓고 나면 허기가 찾아오고, 조금만 아끼면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친구에게 보낼 카톡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마음처럼, 나를 지키려는 마음과 상대를 지키려는 마음은 늘 어설프게 맞물렸다. 너무 가까워지면 힘들어지고, 너무 멀어지면 서운한, ‘적정 거리 미달 혹은 초과’를 반복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최근 가장 자주 떠오르는 질문은 “좋은 관계란 무엇인가?”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원하는 관계의 형태는 무엇인가?”에 가깝다.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숨 쉴 틈이 필요하다는 것. 가까울 땐 기대고, 멀어질 땐 서운해지는 감정의 진폭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혼자서도 온전히 설 수 있는 거리. 나는 달과 지구처럼 지나치게 밀착되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그런 안전거리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어른이 되면 관계가 쉬워질 줄 알았지만, 그건 반쯤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상처의 패턴을 알고 나니 더 조심스러워졌다.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도 자연스레 달라져, 이제는 무리해서 웃지 않는다. 피곤한 날에는 “내일 연락할게”라고 솔직히 말하고, 마음이 복잡할 때는 SNS에 올린 밝은 사진 뒤로 숨지 않는다. 대신 나 자신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며 오래된 플레이리스트를 듣거나, 오래 바라보던 책을 선물하듯 구매해 하루 종일 읽는다.
나를 돌보는 일도 하나의 관계 맺기라면, 그 정도는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이 관계도 쉬운 편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배우고 있다. 예전처럼 나를 소모시키지 않고, 누군가를 지나치게 붙잡지도 않는 방식으로.
오늘도 사람들과의 간격을 신중히, 그러나 단호하게 조절해 본다.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그 애매한 간격에서.
서로가 서로를 놓치지 않을, 딱 한 칸 정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