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도 자꾸 오길래, 이번엔 나란히 앉아봤다
‘괜히 그랬나’,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이 세 질문은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개봉되는 영화의 제목이다. 사소한 고민에서 존재의 문제까지, 여러 화면이 겹쳐 흐르곤 한다. 그 영화는 대개 작은 자아 성찰로 시작해, 어김없이 후회라는 장면으로 끝났다. 후회 없이 살고 싶어 애써도, 시간처럼 완강한 존재 앞에서 나는 매번 무너졌다. 후회는 늘 조금 늦게 왔고, 꼭 내가 가장 약해진 순간만을 비집고 들어왔다. 하루의 온기가 사라진 밤, 불 꺼진 방에서 이불 끝을 끌어당길 때처럼 말이다.
그 질문들은 하루의 끝까지 따라붙었다. 그러다 보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에너지마저 빠져나가 빈껍데기만 남았다. 아주 작은 가시 같은 말과 표정들이 불쑥 날아와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곤 했다. 이미 끝난 장면인데도, 되레 지금보다 더 깊게 베어 왔다. ‘그거 하나도 못하다니.’,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나는 못할까.’ 잘못을 바로잡고 싶어 시작한 후회였지만, 정작 나는 그 잘못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그때의 나를 미워했고, 그 미움은 마음 어딘가에 조용한 균열을 남겼다. 그 균열이 거의 한계에 닿아 있었던 것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몰아붙이던 미로 속에서 출구를 발견한 순간이 있었다. 그날도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쪼그려 앉아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어린 시절 눈치를 보던 내가, 하루를 기어이 버텨낸 내가, 살아남으려고 몸을 일으켜 왔던 모든 날의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게 응원의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참담하게 느껴졌다. 스스로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 그 순간, 마음속에서 질주하던 생각들이 잠시 멈춰 섰다. 그제야 비로소 후회는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읽어야 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의 선택은 결국 눈앞의 풍경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못하고 살았다. 도달할 수 없는 낙원을 꿈꾸며 자신을 몰아세웠고, 그 괴리감에 더 아파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후회는 단순한 잘못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또 하나의 선택지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나무의 나이테가 겹을 이루듯 생각의 다양성도, 깊이도 서서히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때는 보지 못했던 길이 조용히 떠오르곤 한다. 되돌아본다는 건 실수를 찾아내려는 일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서툴렀지만 한편으론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후회를 붙잡아 놓는다고 시간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후회를 없애기보다, 그 감정을 성찰로 바꾸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그 경험을 미래의 판단에 쓰일 재료로 남겨두려 애쓰는 중이다. 물론 성찰이 너무 오래 머물면 죄책감으로 굳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에,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하는지도 함께 배우고 있다.
이렇게 돌고 돌다보면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닿게 된다. 과거라는 시제가 존재하는 한 후회는 삶의 일부로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후회를 없애려 하기보다 잘 기억하고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이제 후회를 밀어내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쓰리지만, 그 감정들이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살아온 시간을 말해주는 듯하다. 나는 그 조각들을 조심스레 모아, 언젠가 길을 비출 작은 불빛쯤으로 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