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도 인생도 막막할 땐, 일단 메모장
언제부터였을까. 글자를 읽는 일은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유명 작가의 책은 물론,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의 깨알 같은 글씨까지 읽어 내려갔다. 종이와 글자만이 있는 그곳은 변수가 끝없이 이어지는 현실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 좋은 피난처였다. 우리 집에서 내 자유의지로 되는 것은 읽는 행위뿐이었기에 반강제적으로 시작한 읽기였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 속에서 숨을 쉬곤 했다.
어린 시절엔 다독상을 곧잘 받았고, 학창 시절에는 도서관 사서로 활동하며 새로 들어오는 책을 제일 먼저 펼쳐 보곤 했다. 답답하거나 우울할 때마다 적절하게 읽을 책이 있는 독서의 세계는 내게 세상을 배우게 하면서도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은신처였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읽는 것만큼이나 꾸준히 글을 써왔다. 학교 숙제로 쓰던 일기에서 시작해, 좋아하는 시를 필사했다. 그러다 어느새 메모장에 짧은 시를 남기고, 지금은 짧게나마 에세이를 쓴다. 글쓰기는 어느 순간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되어 있었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글 앞에서만큼은 늘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일까. 하루의 고비가 올 때면 자연스레 휴대전화 메모장을 켜 글을 쓴다. 감정에 떠밀려 마음의 응어리를 토해내듯 쓰다 보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던 덩어리 진 감정들이 ‘외로움’이나 ‘두려움’처럼 손에 잡히는 단어가 되어 문장 사이로 스며든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내 안의 폭풍 같던 혼란은 서서히 속도를 잃어갔다. 우울함에 잠겨 허우적대던 나에게 그렇게 글은 한 줌의 숨이 되어준다. 쓰기 전에는 형체가 없이 뒤엉켜 있던 마음이 내 손끝에서 하나의 글로 완성될 때쯤이면, 숨 막히던 감정은 메모장에 녹아 사라지고, 잔잔한 설렘만 남곤 한다. 격양된 마음으로 쏟아낸 글이 오히려 나를 다독이며 담담히 감정을 품는 모습을 보면 늘 신비롭다.
몇 시인지도 모를 시간, 불 꺼진 창문이 바깥의 단서를 지워버린 채 나도 어둠처럼 그저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누군가의 웃음소리만 흘러들어왔다. 그날이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날이었는지, 처음 정신과를 다녀온 날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의 감각이 제자리를 미처 찾기 전에, 노트북 화면 위로 겹쳐 뜬 엑셀 파일과 “요즘 일은 어때?”라는 친구의 메시지가 어지럽게 뒤섞여 보였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적었다. “살고 싶다. 숨 쉬고 싶다.”
그 문장은 울음보다 먼저 내 안을 비웠고, 잔뜩 고여 있던 감정의 웅덩이를 서서히 말려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아직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구조 신호라는 걸. 살아남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띄운 그 짧은 문장은 글쓰기가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숨을 잇기 위한 일임을 깨닫게 했다. 내가 던진 그 작은 구조 신호 덕분에 다시 생의 한복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세상의 소란 속에서 홀로 갇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써야 했다.
내게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이제 ‘산소’이자 세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나만의 비밀 정원’이다. 세상에 휩쓸려 숨이 막힐 때마다 글은 조용히 나를 다시 살게 한다. 무미건조해진 일상에도 글은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것이 내가 하루의 끝에 서툰 문장들을 놓아두는 이유다.
나는 오늘도, 글로 가장 솔직한 호흡을 이어간다. 비록 투박해도, 그 투박함마저 나의 진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