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3. 인생의 킥

절망보다 절묘함. 울음보단 웃음

by 골골


오늘도 세상은 괜히 나를 건드린다.

나는 그 모든 사건을 ‘감사’라는 이름의 블랙 코미디로 넘겨본다.


몇 달 만에 열어 본 김치에 곰팡이가 피지 않았음에,

공중화장실 마지막 칸에 휴지 세 칸 남아있는 그 정확한 인심에,

배터리 5%와 보조배터리 한 칸의 절박한 연대에 감사하다.

해진 속옷이 하루를 찢기지 않고 버텨줬음에,

양말에 구멍 난 날 하필 입식 식당을 만난 우연에는

나를 잊지 않는 작은 조력자가 있는 듯하다.

사흘째 기름기를 품은 머리칼이 기적처럼 ‘무광 코팅’으로 버티고 있으면

내 인생도 의외로 버틸 만하다는 이상한 확신이 든다.


급똥이 마려운 순간 잠겨 있던 화장실 문을 누군가 탁 열어줄 때,

발표 직전 열린 바지 지퍼를 눈치챈 미세한 생존 본능이 나를 간신히 구해낸다.

모든 게 귀찮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뜻밖의 자유는 세상의 드문 배려처럼 느껴지고,

배고픈 밤 햇반 하나와 김 한 봉지가 남아 있으면 세상이 아직 나를 완전히 버린 건 아니구나 싶다.

세상이 무너지는가 싶다가도 좋아하는 붕어빵 포장마차 불빛이 골목 끝에서 번지면

아직 내 몫의 단팥 한 스푼쯤은 남아 있는 것 같다.


편의점 알바가 나보다 더 피곤해 보여 이상하게 위로받은 기분이 들고,

통장 잔액이 세 자리여도 0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무기력에 누워 있기만 하던 날, 빠져나간 건 지갑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라

그래도 금전적 타격은 없어 숨을 고른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도 흘러내리는 눈물이 티 나지 않아 조금은 가벼워지고,

밤새 울었는데 아침에 붓지 않아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 허락된 듯해 묘하게 짜릿하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싶었던 날, 아무도 날 찾지 않아 어이없게도 살맛 난다.


세상은 여전히 각박하고 나는 여전히 찌질하지만,

이 속에서도 웃길 건 웃기고

살아낼 건 살아내는 내 방식이 조금은 사랑스럽다.

인생의 킥은

울음보단 웃음,

절망보단 절묘함.


오늘도 그렇게,

나는 내 하루를 겨우—but 당당히—견뎌낸다.





안녕하세요, 작가_골골입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2025년의 끝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네요. 저는 여전히 골골거리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연말을 맞아 작은 미소를 선물드리고 싶어 ‘감사’를 주제로 약간의 재치를 가미해 보았습니다.

평소 글보다 톤이 가볍지만, 이 버전도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의 여러분은 어떤 시간을 지나오셨나요? 그리고 내년 2026년은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으신가요?


새해를 앞둔 지금,
‘해야 할 일’에서 잠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새해와 함께 『오늘도 골골거리며 버티는 중』 시즌 2가 시작됩니다.

(브런치북에서는 S2로 표기될 예정입니다.)


S2(season 2)에서는 일상 곳곳의 장면들을 관찰해 보려 합니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말이죠.

스쳐 지나가던 순간들의 결을 하나씩 꺼내어 적어볼게요.


1월 5일, 2026년의 첫 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만나요!


앞으로도 월요일과 금요일마다 꾸준히 만나뵐 수 있기를 바라며, 짧은 글을 마칩니다.


느린 걸음으로, 오래 함께 걸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y. 작가_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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