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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May 07. 2024

흐른다! 중년의 시간!

기쁘고..가슴 아팠던..

중년의 나의 환경

1980년대 중년에 나는 인천 만수동에 살면서 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며 아파트 관리사무소 총무, 관리주임, 관리계장, 관리과장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때 주택관리사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으나, 자격증이 없어도 관리소장을 할 수 있는 시절이라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자격증 미보유자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어 1990년대 후반부터 2년마다 실시된 주택관리사 시험에 도전하였으나 계속 낙방하다가 1998년 제5회 시험에 합격하였다. (4수 8년 만에) 계속 낙방하는 미안함에 합격자 발표 전날 저녁 남동구청 게시판에 밤늦게 공고하는 것을 보고 합격된 사실을 알게 되어 아내와 뛰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주택관리사 합격 당시 나는 계속 시험에 낙방하여 주위에 창피하기도 하고 집안 살림을 보태야 했기에 수원 당수동에 있는 삼정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할 때였다. 합격 후 곧장 효성동에 있는 '유승 그린 아파트' 1차 관리사무소에서 7년을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주택관리사 관리업무에 종사하게 되었다. 주택관리사 자격 취득 이전부터 2019년 2월 28일부로 퇴직한 세월 동안 관리사무소 근무 경험만 34년이 된 것 같다.


그 시절 가장 기뻤던 순간

주택관리사 합격 이후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무를 수행하면서 친척이 없던 나에게 너무나 많은 좋은 입주민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지금까지도 자주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아내와 아들 가족 모두 1998년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 입교하면서 1999년 세례를 받게 되었다. 가브리엘, 가브리엘라, 야고보, 사도요한 성서 말씀대로 우리 가족은 새롭게 다시 태어났으므로 가장 기뻤다.


그 시절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

2000년 여름 15년 넘어 관절염으로 누워 투병을 하신 어머니(마리아)가 돌아가시고 같은 해 12월 말기 직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여동생(마리아)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만수1동 성당 영안실에서, 여동생은 연수성당 장례식장에서 보내드렸다.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내 자신의 몇 안 되는 혈육을 잃었다는 사실이 무척 슬펐다. 너무 외로웠다.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주택관리사로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제2의 인생을 위하여 보람된 방향을 찾아 새로운 배움을 찾을 것이다. 가령 생명을 다루고 우 울증이나 자살예방 등을 상담하는 심리상담사로 늦은 감이 있지만 별정직 공무원의 길을 찾았을 것이다. 사는 동안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장례봉사, 장애인 상담 및 봉사 등··· 최소한의 생활비만 된다면 그들을 위하여 살 것이다. 사는 동안 아내와 가족들에게 생활의 넉넉함을 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시인이나 문인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나대로의 창작활동을 하고 싶다.


그 시절 나의 형제자매

어린 시절부터 가난했던 집안이라 친척이 없는 나에겐 40대 초반 세상을 떠난 여동생이 그립다. 우린 3남매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지만, 여동생은 결혼 후 시동생과 함께 지내며 힘들게 살던 시절이다. 고난을 버티고 좀 살만 하겠구나 했더니만, 직장암 말기로 일찍 세상을 등졌다. 남동생은 넉넉지 못한 살림에 제대로 학업도 못 마치고 밑바닥 고생부터 해온 터라 술과 담배를 일찍 배워 주위를 힘들게 했다. 술만 취하면 동네가 시끄러웠다. 아들들도 삼촌이 술만 마시고 오면 무서워했다. 그래도 정만은 무척 많아 아들들을 매우 챙겨주었다. 모두가 형인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살았다. 동생들 모두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살았다. 또한 신부님이나 목사님처럼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중년의 의미

내 인생의 중년은 가족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새삼 생각하게 하였던 시기인 것 같다. 가난과 어려움이 계속 닥쳐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가족이 있기에 가능했다. 어디 하 나 의지할 곳 없는 내 자신을 붙잡아 준 것이 아내이며 가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그러했지만 가족들에게 미안함 뿐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 자식들에게도 원하는 것 을 제대로 주지 못한 아버지로서 괴로운 적이 많았다. 그러나 자그마한 정이라도 흠뻑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금은 건강하게 배우자들을 만나 손주들을 낳고, 소중함을 알게 해 준 아들들이 고맙다. 함께 살아오는 동안 모든 고통과 고난을 참고 이겨 내준 아내가 고맙다. 사는 동안 감사함과 미안함뿐인 것 같다. 또한 좋은 친구와 이웃을 만나 행복하다. 그들이 있어 내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 느끼게 된다. 불현듯 3년 전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서희가 보고싶다. 중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동료, 이웃들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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