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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May 08. 2024

하늘 아래 하나뿐인 여동생이 있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일가친척도 없이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3남매였다. 지금으로부터 19년이 전 2000년 12월 겨울, 눈이 하얗게 덮인 계절에 인하대병원에서 여동생을 직장암으로 보내야 했다. 그때 여동생은 45세로 꽃다운 나이였다.


집안의 파산으로 빚쟁이들을 피하여 숨어 살아야만 하는 바람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지만, 당시 전국 고등학교 주산 대회에 나가 큰 상을 받아와 학교에 기여한 공이 크다며 나중에 졸업을 받을 수 있었다. 1981년 가을에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평생 반려자인 경상도 신랑 강서방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며 1남 1녀의 자녀들도 잘 키웠다. 종갓집 장손 맏며느리여서 시동생 2명과 13평 주공아파트에서 같이 살면서 뒷바라지를 다하며 힘들게 살았다. 어딜 갈 때마다 생활비를 아낀다고 무조건 걸어 다니던 알뜰하지 못해 바보스럽기만 하던 억척이였다. 누구한테든 신세 지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고지식한 성격이었고, 하나뿐인 오빠나 남동생에게도 무엇하나 잘 베풀지 않아 야속하기까지 한 누이였다.


동생은 30대 초반부터 치질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 정기 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주안역 뒤 개인병원에서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여, 아무 생각 없이 인하대병원을 찾았다. 입원 후 기본검사부터 조직검사까지 하다 보니 직장암 말기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행복을 찾는가 싶더니만•••••. 수술을 안 하면 6개월쯤 살 것 같다 하여 기적을 바라며 수술을 했다. 이후 인공항문에 의지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보고 싶은 사람 만나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누워서 만 2년을 살다 간 누이! 10번 이상 응시하고 운전 면허증을 땄다고 그렇게 좋아하더니만 직접 자기 차를 운전 한번 못해보고 갔다.


동생이 마지막 가던 날 울면서 하던 말이 지금도 귓전에 계속 맴돈다. "오빠! 가지 마. 날 두고 가지 마. 무서워·••••." 평소 살갑게 오빠라고 잘 부르지 않던 동생이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으면 이 못난 오빠만을 찾았을까? 그동안 나는 동생에게 무엇 하나 잘해준 게 없었다. 맛난 것, 좋은 것, 사준일도 없는 오빠였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직장에서 술이라도 한잔 마시게 되면, 동생이 생각나 밤늦은 시간이라도 병실을 찾았다. 침상에 누워 있는 동생 얼굴을 보며 소리 없이 울며 기도만 드렸다.


누이야!

이 오빠도 이젠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네. 너도 살아 있으면 60대 중반이지. 자식은 엄마보다 먼저 가면 안 된다는 너의 기도가 하느님께 닿았는지 2000년 8월에 엄마(마리아) 먼저 보내드리고 너는 이승을 떠나기 싫어 몸부림쳤지만 12월에 결국 우리 곁을 떠났지. 벌써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 누이야, 사는 동안 너와의 추억은 못해준 것뿐이구나. 안산 영각사 납골당의 고운 모습의 네 영정사진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단다. 하늘나라에서 이 못난 오빠를 탓하며 기다려주렴, 죽기 전 그 이쁜 모습으로 우리 다시 만나자. 우리 다시 만나게 되면 꼭 너에게 못해준 것 모두 다 해줄게.


연수동 성당 장례식장에서 습하는 날 너의 인공항문을 찼던 자리를 그냥 두지 말고 정상인처럼 매끄럽게 처리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었지. 가는 순간까지 인공항문을 차고 고생하던 너의 몸으로 보내기 싫었단다. 오빠가 네 아픔을 대신할 수 없고 병도 낫게 할 수 없었기에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생전의 그 고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사랑하는 여동생 누이야!

나도 15년 전부터 디스크로 허리 통증이 심하여 네가 수술했던 인하대병원 5층 중환자실 옆 통증클리닉에 다니며 치료받고 있단다. 네가 수술하고 죽기까지 입원하여 있었던 5층 중환자실 복도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이 못난 오빠를 용서해 다오.


누이야!

통증클리닉에 치료받으러 갔던 첫날 나는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했단다. 어쩜 그리 너를 꼭 닮은 간호사가 나를 맞아 주다니! 네가 다시 살아와 나를 맞아주는 줄 알았단다. 집에 와서 언니한테도 "오늘 병원에서 누이를 꼭 닮은 간호사를 만났어."라고 했단다.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하고 기절할 뻔했다고. 몇 달 동안 네 모습을 상상하며 진료받을 수 있어 무척 좋았는데 그 간호사도 그만두었는지 요즘엔 안 보이더구나. 아마 순간적이라도 너의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이 못난 오빠에게 베푼 주님의 선물이었나 봐. 너는 분명 저 하늘 천상 낙원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네가 무척 보고 싶어 했던 좋은 이들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사랑하는 동생!

너와 나에게 그렇게 술만 마시면 속만 썩이던 동생 태모 (다니엘)도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나이 50살이 넘어 짝(마리아)도 만났단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알콩달콩 살다가 2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이젠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못 한단다. 아무 일을 못하고 살아도 착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지금 저 모습이라도 내 곁에 있어 얼굴을 볼 수 있음을 주님께 감사드린단다.


이 오빠의 못난 모습만 보다가 떠난 너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구나.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늘나라에서는 이 못난 오빠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용서하려무나. 우리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헤어지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그땐 내가 잘할게. 그럼 잘 자라. 꿈속에라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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