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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09. 2024

<흉통>

놀랄 일 없는 삶..

2024년 문장웹진 4월에 실린 김이설 작가의 단편 소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로 등단 후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기성작가.


줄거리 :

첫 문장에 빠져든다. [놀라지 말고 들어.] 옛날이야기, 혹은 무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기분의 첫 문장이다. 주인공 은수는 바쁜 생업 중 엄마의 전화를 받고 이상한 기운을 느끼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엄마가 직장암이라는 말을 듣고도 덤덤하다. 직장 동료 서 과장은 말없이 내 등을 다독여줬다.


은수는 살면서 놀라지 말고 들으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 젊은 시절 엄마의 자궁암, 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와 집안 경제문제, 오빠에게 필요했던 급전에 대한 이야기, 동생의 이혼이 있다. 가족들과 차례로 통화를 하고 집에 도착하자 석훈이 식사를 차려 놓았다. 석훈은 혜원이라는 대학생 딸이 있는데 주말에 다 같이 만나서 살림을 합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다.


주말에 혜원에게 어른의 옷을 사주기로 했다. 은수도 30년 전 대학생 시절에 엄마에게 백화점에서 옷을 선물로 받았는데 은수에게는 참 의미 있는 기억이었다. 은수도 혜원에게 그런 기억을 주고 싶었다. 본문에는 [성인 여성이 성인 여성에게 보일 수 있는 가장 친근하고 가장 큰 호의와 가장 다정하고 가장 믿을 만한 안내자가 되고 싶었다.]고 나온다.


은수가 석훈을 만난 건 선배의 장례식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석훈의 아내가 폐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수는 엄마의 자궁암 경험과 힘든 시절 이야기를 고백했고, 석훈은 웃었다. 은수는 그 석훈의 모습에 이끌려 관계를 갖는다. 석훈의 아내는 그 후로 2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은수, 석훈, 혜원은 맛집에서 식사를 한다. 은수는 내내 죄책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은수는 혜원을 만난 뒤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좋은 여자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혜원은 지금 은수와 석훈이 살림을 합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은수는 엄마네서 하루를 보내며, 엄마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가 답답했다.


연휴가 끝나고 바쁜 생업 중에 다시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 엄마의 검사 결과 직장암 말기라고 한다. 좀 더 말을 들어보니 손쓸 수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동생은 울고, 오빠는 보험금 이야기만 하고 있고, 아버지는 치료를 하자고 하신다.


새해 첫날이자,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기 전날 모두가 엄마네 모였다. 좋지 않은 상황 속에 억지 농담에도 웃음이 나오기 힘든 진지한 분위기다. 간병 그리고 병원비, 병원비로 힘들어지는 경우에는 아파트를 내놓자는 계획까지 정한다. 오빠는 계속 돈 이야기와 함께 분을 못 참으며 밖으로 나갔고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은수는 석훈과 미리 계획했던 여행 이야기를 했다. 대만이든, 호주든, 엄마도 아픈데 여행을 간다는 일이 마음에 걸린다. 결국 은수는 석훈에게 혜원과 둘이 다녀오라고 말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엄마는 외모가 급격하게 아픈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직도 암 전이상태를 몰랐다.


목요일마다 집에 오던 석훈과는 서로 대화가 줄었다.


은수는 다시 바쁘게 일상을 보냈다. 일상 안에서 가끔 석훈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석훈은 전 아내에 대한 경험을 갖고 말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은수는 그럴 때마다 석훈이 낯설다.


엄마의 외모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죽을 날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엄마.] 은수를 포함한 누구도 엄마에게 암 전이 상황을 사실대로 알리지 못했다. 회사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바빠졌다.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가 찾고 있다는 아쉬움이 섞인 전화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느낀 점 :

현실적이다. 누구나 겪을법한 경험들이다. 결코 좋은 경험은 아니다. 암 환자가 계속 나오고, 애달프고, 무기력한 인간 존재가 보인다. 짧지 않은 단편 소설이지만 모든 단락장 내내 공감을 일으킨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은수는 무기력하다. 동생, 오빠, 아빠, 그리고 애정 관계를 갖고 있던 석훈, 서 과장은 은수에게 아무런 위안도 못된다. 석훈의 딸인 혜원은 애초부터 남과 같은 관계다.


서사는 12월부터 5월까지의 시간 연대기 순으로 이어지다가 중간중간 플래쉬 백으로 과거의 서사도 나오고 있어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서사를 놓치기 쉽다. 그렇지만 서사의 맥을 잡으면 부드럽게 잘 읽히는 글이다.


소설 내내 이어지는 주인공 은수의 독백이 좋았다. 실존하는 어떤 여성의 독백 같아서 그 속마음을 훔쳐보는 느낌으로 읽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은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은수는 12월부터 무기력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 감정은 소설의 결말 부분인 5월까지도 그대로 이어진다. 무기력하다기보다는 무력하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은수는 삶에 무력했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삶에 굴복하고 있고, 부조리한 세상에도 저항심이 없다. 세상에 무력인 인간 그 자체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더 안타까움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좋았던 부분 :

[놀라지 말고 들어]라는 문장이 이 소설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주인공 은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놀랄 일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놀라지 말고 들어]에 거의 놀라지 않는다. 은수는 어쩌면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며 놀라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졌고, 그래서 이 문장은 은수라는 인물을 그대로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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