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라는 족속들
“야 인마 고철.”
“야 새끼야, 신입사원이 벌써 졸고 앉아있나?”
정신을 차리며 깨어보니 사무실이었다. 옆에서 부르는 사람은 멘토 변규선 대리였다. 주변은 사무실 업무 공간, K1 공장의 4층 사무실 정중앙 통로 쪽 좌석이었다. 화장실이나 계단으로 가는 길목이라 많은 사람의 통행으로 언제나 번잡한 막내의 좌석이었다. 주변의 많은 막내는 그저 좌불안석의 상태로 자리를 지켰다.
“야 고철이, 이 새끼가 왜 대답을 안 쳐해?”
저 사람은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서 만나게 된 멘토, 그리고 내게는 사수라는 양반이었다. 나보다 회사에 입사한 이력이 4년이 빠르고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다. 대리라는 직급도 이제 막 달았다. 그런데 하는 행동은 이미 10년이 넘은 선배와 같이 중견 사원의 모습을 보이는 변규선 대리다. 눈에 핏대를 자주 세운 나머지 충혈이 되어 흰자위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안 그래도 눈이 큰 편이라서 눈이 튀어나올 것 같고 혼탁한 눈동자보다 흰자위가 더 많이 보여서 좀 무섭게 생겼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어떻게 무서운 얼굴을 보일 수 있을지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직모에 앞머리는 눈을 찌를 듯 커튼처럼 길게 가라앉아서 치켜뜬 눈이 머리카락에 찔릴까 염려된다. 얼굴은 길고 각진 안경을 써서 사람이 더 날카롭게 보이는 인상이다. 키는 180 정도로 보이지만 마르고 길쭉한 체형이라서 조금 더 커 보이는데 옷마저 터틀넥 니트를 입고 있어서 더 길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별명은 변기린이다.
변기린은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 빨리 대답을 안 하면 아마 더 욕을 먹는다.
“네 규선이형,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저 사람은 처음부터 개인 판단에는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는지 본인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리고 나 고철수를 언제나 고철이라고 불렀다. 변기린의 기분은 도무지 예측하기가 힘든데 살살 눈치를 보다가 그의 언행이 조금이라도 불편해 보이면 재빨리 사과해야 한다. 사무실에 배치받은 초반에는 눈치가 없어서 매일같이 그의 폭언에 시달렸다.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밖에서 입에 담기도 힘들었던 욕설을 들으며 이러려고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들어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변기린은 내 꿈에도 나와서 나를 힘들게 했고 그 악몽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억울했는지 울면서 잠에서 깨어난 적도 있다. 물리적인 폭행이 없었을 뿐이지 내 마음은 무차별 폭언으로 매일 얻어맞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한 달간 깊게 병들어 있었다.
“이 자식아 무슨 일이 있어야 부르냐? 네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서 불러봤다.”
그는 언제나 별 시답지 않은 일로 나를 부른다. 변기린은 멋쩍은 듯 장비의 공정 시간을 수정했냐고 내게 물었다. 아직 모든 공정 시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뒷감당이 무서워서 일단 확인했다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변기린에게 욕을 먹으면서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그의 숙취 해소의 대상이 되고, 어떤 날은 그의 화를 받아주는 인간 샌드백이 되어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었다.
난 금성전자 2차전지 사업부 생산부 특수조립팀 신입사원 고철수 사원이다. 배터리 생산부에는 다섯 군데의 지옥이 있다. 지옥 같아서 다들 지옥이라고 부른다. 사출지옥, 도색지옥, 유리지옥, 자재지옥, 조립지옥 이렇게 다섯 지옥이 있다. 견딜 수 있는 난이도는 이 순서가 일반적이다. 사출지옥이 생산부에서는 제일 살기 어려운 지옥이다. 사실 모든 팀은 지옥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부족하다. 여기에 하나 꼽사리로 있는 팀이 내가 소속된 특수조립지옥이다. 기술의 발전은 특수물질의 사용이 필요했다. 그것이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관리하기가 까다롭다고 해서 3년 전에 특수조립팀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수조립팀을 만들 당시에 위험 물질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과 새로운 팀은 일이 힘들다는 소문이 퍼져서 지원자가 별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기존의 팀에서 팀별로 한두 명씩 빼줘야 했기에 애매한 팀원을 차출해서 만들어진 팀이 특수조립팀이다. 그렇게 각 팀에서 소시오패스와 아웃사이더들이 모인 팀이다. 애초에 팀이 만들어진 배경부터가 정상적인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팀이었다. 우려와 다르게 업무는 생각보다 편했다. 관리 공정, 관리 장비가 몇 개 없다. 인원은 팀 단위 인원인데 담당업무는 다른 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신입의 위치로는 결코 좋아할 팀이 아니다. 군대에서 전방은 몸이 힘들고 후방은 정신이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 말 그대로 정신이 힘든 곳이다. 게다가 조직력과 단합력이 꽝이다. 공동체 의식이 모자란 이상한 팀이다. 더 큰 단위 본부인 생산부는 생지옥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죄를 지은 사람 취급을 받는 곳이다. 조금 과장하면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람들이 언제 갑자기 잘못될지 모르는 상황처럼, 생지옥부의 사람들 또한 언제 갑자기 잘못될지 모르는 상황에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섯 지옥에서 조립지옥의 주요 업무는 팀의 이름으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 배터리 제조 공정상 조립이 들어가는 작업을 아무 문제 없이 깔끔하게 작업해 줘야 한다. 물론 장비가 작업 대부분을 해준다. 사람은 장비를 관리하고 장비가 공정을 잘 진행해 주는지 옆에서 봐야 한다. 난 장비의 공정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내려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수씨, 이리 와봐요.”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 김선호 사원이다. 1년 선배다. 작년에 입사한 선배이며 나이가 젊은 편인데 대화의 화법이나 단어 선택은 과장이나 차장 못지않다. 나이가 20대 후반인데 외모는 40대의 외모를 갖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그는 배가 나오고 살찐 아저씨 몸매에 키는 170 중반 정도로 보인다. 인체 비율 대비 머리가 상당히 크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당연히 대갈장군으로 불렸을 정도로 규모 있는 머리 크기다. 머리카락은 짧은 직모이다. 피부는 제주도 현무암과 같이 까무잡잡하며 거칠어서 만지기 싫게 생겼다.
“철수씨, 매일 같이 본인 사수 장비만 만지지 말고 다른 장비도 만져보고 그래요. 내가 이렇게 하자고 하면 이렇게 하는 거예요. 내 말 듣고 같이 내려가서 만져보도록 해요.”
김선호 사원은 나보다 한 살 어린 선배다. 나보다 입사를 1년 먼저 했다. 그래도 선배라고 선배 대접을 받고 싶어 하고 선배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젊은 꼰대다. 처음 받아본 후배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우리 둘은 함께 현장으로 이동했다. K1 건물의 4층은 사무실이고 장비가 있는 곳은 3층이다. 보통은 계단으로 내려간다. 우린 딱히 별말 없이 현장 입구에 도착했다.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진복이라고 하는 먼지가 붙지 않는 흡사 우주복 같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매일 같이 갈아입어야 하는 옷이다. 방진복은 땀이 많은 내게는 무척 답답하게 긴장하게 만들면서 더 많은 땀을 만들게 하는 옷이다. 신문, 방송에서 봤을 때는 최첨단 설비 앞에 우주복을 입고 서 있는 엔지니어들이 좋아 보이고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지옥이다. 우선 수분의 배출이 안 된다. 피부가 숨을 못 쉬니 답답하다. 이런 상황을 내 육체에서 눈알 빼고 다 겪어야 한다. 눈알 빼고는 방진복으로 모두 가려지기 때문이다. 탈모가 와서 머리가 벗어져 정수리 뚜껑이 날아간 선배들도 많다. 몸의 열이 결국에는 머리로 올라가는데 머리도 숨을 쉬어야 할 터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탈모 관리는 꼭 신경 써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방진복에 있는 잔여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공기 샤워를 하고 현장에 들어갔다.
뉴스에서만 보던 배터리 생산부 현장이다. 머리 위에 운송장치라는 배터리 제품의 운송 장치가 돌아다니고 축구장의 몇 배 넓이에 해당하는 공간에는 수많은 배터리 제조 장비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 그 끝이 안 보인다.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은 젓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송송 뚫려 있고 천장의 수많은 공조 구멍이 쉼 없이 현장의 청결도와 온도, 습도를 관리하고 있다. 인공적으로 맞춰진 온습도는 내 신체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각종 기계가 만드는 소리는 내 귀를 자극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4차 산업 기계들의 세상이다. 사실 이 넓은 곳에서 특수조립 팀의 담당 장비는 몇 대 없다. 특수조립 장비가 10대쯤 있고 내가 변기린에게 배워서 매일 만지는 장비는 그중에 3대가 있다. 이제 김선호 사원이 알려줄 장비는 또 3대가 있다.
“고철씨, 아, 미안 철수씨. 멘토 양반이 하도 그렇게 불러서 헷갈려서 그래요.”
이 사람, 둘만 있다고 일부러 저렇게 꼽주는 것 같다.
“철수씨, 매일 같이 본인 장비를 오전, 오후 확인해 보는 것은 좋아요. 근데 이젠 입사한 지 한 달이 넘었으니, 다른 장비도 한 번씩 만져보는 게 좋아요. 다들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이 사람의 말투는 참으로 기분 나쁘게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말투다. 그래 봐야 입사 2년 차로 새파란 신입을 갓 벗어난 상태인데 말이다.
“철수씨, 사실 먼저 할 말이 있는데 나는 당신이 퇴사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