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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Aug 03. 2024

선배, 여긴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난 한 명의 병신이었다.

대규모 조직개편이 공지되었다. K1 공장과 K2 공장의 통합이다. 팀이 통합되어 공장을 통합 관리하겠다는 경영 방침이다. 더불어 부천에 K3라는 공장을 준비하기 위한 프로젝트 본부가 구성되었다. 통합으로 남게 되는 팀장, 파트장들이 우선적으로 프로젝트 팀으로 이동하여 신규 공장을 준비하게 되었다. 다른 팀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생산본부의 경우는 K1 공장의 생산본부로 흡수되는 셈이다. 보통은 매년 초에 이런 조직개편이 공지된다. 소문은 있었지만 공지가 없기에 취소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연중에 공지되는 만큼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으로 보인다. K1 공장은 신규 공장과 다르게 이미 10년 전에 완성된 공장이기에 장비도 많고, 인원도 많다. 선배도 많고, 후배도 많다.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통합 얘기가 나오자 통합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K2 공장에서 함께한 김민수 과장, 권준현 대리, 나, 진달호는 K1 공장에 그대로 흡수되었고 민귀남 파트장은 투자 파트로 빠지게 되었다. K1 조립지옥에는 무려 네 명의 후배와 세 명의 선배가 있었다. 통합된 K1공장으로 출근하여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팀장은 공석이었다. 대신에 이석수 부장이라는 오랜 경력의 부장이 파트장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사람이 팀장의 대행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석수 부장은 보기 드문 20년 생산부 외길 인생 경력으로 입사 동기들은 이미 팀장 이거나 임원을 하고 있다. 우직하게 조용히 일만 하는 사람이다. 근데 윗사람에게 잘 못 보여서 승진심사에서 계속 누락되었고 평가도 몇 번 저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지금은 계속 파트장이라는 직책으로 팀장 직무대행을 하고 있다. 누구는 그를 그냥 팀장이라고 부르고 누구는 그를 파트장이라고 부르고 누구는 그를 존중의 의미로 부장님이라고 부른다. 그의 앞에서는 호칭의 다양성이 공존한다. 외모는 영락없는 부장님의 모습이다. 얼마 남지 않은 희끗한 머리는 가발같이 보인다. 낮은 코로 인해서 계속 흘러내리는 안경과 세월이 말해주는 얼굴의 주름들,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앉아있었음을 말해주는 그의 뱃살, 터질 듯이 그의 몸을 겨우 잡아주고 있는 셔츠의 그저 그런 부장님 모습이다. 자리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늘 화면의 전산을 새로고침 하고 앉아있다. 그리고 언제나 사원들을 본인의 자리 앞으로 부른다.


“처.. 철수 사원 여기 좀.”


이석수 파트장은 말을 좀 더듬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느린 입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네..”


“이.. 이거 이거 튄 거 뭐야?”


“에? 이거 십 분 전에 튄 거네요?”


“아..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십분 전이든, 십분 후든 이렇게 튈 거 예상하고 미리 공정 시간을 수.. 수정했어야지. 그게 너의 능력이지. 뭐..뭐 하고 있었어.”


“네.. 지금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하면 얘기는 바로 끝난다. 사실 지금 내게 힘든 사람은 이석수 부장보다는 후배들이다. 후배들이 알면 알수록 퇴사 유발자들이다. K1 생산부 후배들은 원래 악명이 높았다. 모두 예전에 겪은 라미정, 연민호의 입사 동기들이지만 그들과 하나같이 성격이 달랐다. 언제나 화를 갖고 있다. 조립지옥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들이 분위기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단지, 난 그들에게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먼저 같은 공정의 같은 직무를 맡게 된 탁용칠, 탁용팔 형제는 후배라기엔 선배 같은 기분의 후배들이다. 탁용칠은 올해 서른 살로 나보다 두 살이 어리고 탁용팔은 스물아홉으로 세 살이 어린 후배들이다. 탁용칠은 시골 아이 같은 어딘지 모를 까무잡잡하고 촌스러운 외모에 날카로운 농사꾼의 인상을 갖고 있다. 탁용팔은 라틴계 혼혈아처럼 짙은 쌍꺼풀과 큰 눈을 갖고 있고 구릿빛 피부를 갖고 있다. 이 둘은 친형제는 아니지만 170 초반의 키에 체형도 비슷했고 서로 죽이 잘 맞는다.


“철수 선배, 이거 선배가 이렇게 했어요? 이러실 거면 그냥 건드리지 마세요.”


탁용칠이 인상을 쓰며 내게 말했다.


“그.. 그래?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어?”


되물었다.


“바빠죽겠는데 선배 때문에 두 번 일하게 생겼네. 이거 원자재 빼서 분석 의뢰나 좀 맡겨줘요.”


“그.. 그래 알았어.”


난 그들보다 선배이지만 늘 그들 앞에서 긴장하고 있었다.


“용칠 형, 저 선배가 그 의뢰를 할 수 있을까요?”


탁용팔이 물었다.


“몰라. 그래도 주제에 선배인데 알아서 하겠지.”


탁용칠이 대답했다. 그 둘이 속삭이며 대화했지만 내게 다 들렸다. 분석 의뢰는 보통 막내들이 한다. 내가 막내는 아니지만 먼저 자리 잡고 있던 후배가 일을 부탁했기에 기분이 나빠도 군말 없이 하려고 했다. 근데 사실 분석 의뢰는 조립지옥에서 한두 번 해보고 1년 만에 해보게 되었다. 분석 의뢰 방법을 재확인하고 싶었지만 저런 얘기를 듣고 나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직무는 진달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직무였기에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김민수 과장, 권준현 대리에게 묻기에는 그 둘은 이미 다른 공정을 맡아서 각자 바쁘게 업무를 대응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단은 분석 의뢰서를 작성하고 분석실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분석실은 무척 쾌적했다. 일단 지금 더위가 오고 있는 와중에도 시원한 공조 시스템이 나의 식은땀을 식혀주었다. 분석실 현미경 장비들이 저온에서 촬영해야 품질이 좋다고 하기에 분석실은 언제나 다른 장소에 비해 공기가 선선하다. 구석에 앉아서 접수를 받는 듯한 여사원이 눈에 띄었다. 모니터로 전산을 보며 원자재 조각을 다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의뢰 좀 하고 싶어서 왔어요.”


“넹? 안녕하세요. 의뢰서 없이 샘플만 가져왔어요? 의뢰서 출력해서 종이로 가져오세요.”


“에? 전산 의뢰서 작성했는데, 종이로 또 출력을 해야 해요?”


“네 모르셨어요? 종이 뽑아오시라고요."


전산으로 의뢰서를 다 써두었는데 필요하면 본인들이 뽑지 왜 의뢰자에게 뽑아오라는 것인지 이해는 안 갔다.


“네 그러면 인쇄를 여기서 할 수 있을까요?”


“여기는 외부인이 사용할 PC는 없어요. 사무실 가셔서 뽑아오세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샘플은 잠깐 두고 갈게요."


“가져가셔야죠. 여기는 의뢰된 샘플만 맡고 있어요.”


그녀는 점점 귀찮은 듯이 대답했다. 결국 난 원자재 통을 들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철수 선배 의뢰 아직 안 했어요?? 원자재 통 들고 다니면서 뭐해요?”


탁용칠이 나를 보자마자 호통을 쳤다.


“아. 의뢰서 인쇄하는 것을 깜빡해서. 크크. 의뢰서 뽑아서 금방 다시 의뢰하고 올게. 용칠아.”


“어휴, 선배 빨리 의뢰하고 와요. 다른 할 일 또 있어요.”


탁용칠이 재촉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그런 대접받는 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대충 대답하고 분석실로 다시 이동했다. 분석실 접수대에는 아까와 다른 여사원이 앉아 있다.


“저기 이거 분석 맡길 원자재랑 의뢰서 뽑아서 같이 갖고 왔어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전산으로 의뢰서 올렸어요?”


“전산은 30분 전에 올려두었고요. 아까 원자재만 들고 왔더니, 의뢰서도 뽑아오라고 하셔서 사무실 가서 뽑아서 다시 온 거예요."


“아, 전산에 아까 의뢰서 올리신 고철수님? 네, 확인되셨고요. TEM 단면 분석 맡기시는 건데, ion으로 해요? FIB로 해요?”


다시 또 두 번째 고비다. 둘 중에 뭐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둘의 차이점도 모른다.


“저기 죄송한데 둘의 차이가 뭐죠?”


당당하게 되물었다.


“시료 제작 방법의 차이인데 보통 무른 건 FIB로 하고 그 외에는 ion으로 만들고 있어요.”


“그럼 FIB로 해주세요.”


잘 모를 때는 모든 물질이 무르다는 가정하에 진행한다. 물론 내 생각이다.


“에 또.. 그리고 이거 X축으로 해요? Y축으로 해요?”


세 번째 고비다. 사실 막질의 층이나 목적에 따라 다르다. 이 제품을 기준으로는 조립이 X축으로 되어있고 무작위로 조립 하나가 균일하게 증착되어 있는지 보고 싶으면 X축, 근처 조립의 전체적인 차이를 보고 싶으면 Y축이다. 예를 들어서 이런 식이고 Y축인 경우는 반대다.


“그거는 X축으로 해주세요.”


그냥 찍었다.


“위치는 LBCTR 다섯 포인트 아무 곳이나요?”


이건 안다. Left, Bottom, Center, Top, Right. 왼쪽, 아래, 중간, 위, 오른쪽. 업계 사람들은 이를 줄여서 LBCTR이라고 한다.


“네 아무 데나 해주세요.”


“배율은요?”


이것도 알 것 같다.


“저배율, 중배율, 고배율로 해주세요.”


이렇게 하면 대충 모든 의뢰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촬영 결과물을 준다.


“네 실물도 접수 완료했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겨우 분석실에 제품 분석을 의뢰하는 일이 끝났다. 패스트푸드 주문 중에 서브웨이라는 샌드위치 주문이 난도가 높은데 그 이상이다. 그때 분석실의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의뢰자이신가? 여, 수고들 하고 난 들어가 볼게"


지금 시간은 정확히 오후 다섯 시 반이다. 이 시간에 퇴근하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내 언젠가는 저런 곳으로 가보고자 꿈을 꿨다. 그때 전화가 왔다. 후배의 라인 호출이다. 쉴 틈이 없다. 라인으로 들어가는 길은 과거 K1 특수조립지옥으로 가는 길과 같기에 익숙했다. 익숙한 길로 들어가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장비를 찾아갔다. 그곳에 탁용팔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선배 지금 장비가 먹통이 되었어요. 이게 지금 장비 옆에 다이얼을 조절해야 하는데 조절할 때마다 알람이 발생해서 알람이 울리면 그것 좀 꺼주세요. 끄는 버튼은 이거예요. 정비사들이 지금 다 밥 먹으러 가서 일단 저희가 조치해야겠어요.”


“그래그래 이거 누르면 된다는 얘기지?”


“네 어렵진 않아요.”


그러더니 탁용팔은 장비의 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자리를 잡고 뭔가를 만지는 듯싶었다.


[삐, 삐, 삐,,,]


알람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깜짝 놀랐다. 재빠르게 알람을 껐다.


[삐, 삐, 삐,,,]


다시 끄고,


[삐, 삐, 삐,,,]


계속 껐다.


“선배~ 들려요? 안되겠어요. UI 설정에 들어가셔서 전압 조건 좀 바꿔보시겠어요? 들어가서 300으로 되어 있는 거 290으로 내려주세요. 그거랑 병행해서 해야겠네요.”


“어 해볼게.”


[삐, 삐, 삐,,,]


여전했다. 시간은 어느새 18:30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봐요. 당신 누군데 장비를 만져요?”


누군가 오더니 내게 물었다.


“저 조립팀 고철수 인데요. 지금 탁용팔 사원하고 장비 대응 중이에요. 아무도 안 계셔서 저희끼리 일단은 만져보고 있어요.”


“K2에서 온 양반인가? 일단 나와봐요.”


[푸슝]


장비는 갑자기 멈춘 것뿐 아니라 전원이 내려가 버렸다. 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보여서 뒤로 물러섰다.


“야 혼자 뭐 잘못 건드려서 고장 난 거 같은데?”


그는 다짜고짜 내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려 했다.


“아니에요. 저 탁용팔이랑 같이 하고 있었어요.”


“어디? 어디? 없구먼. 이 새끼가 구라치고 있어.”


그는 목을 있는 힘껏 쭉 빼고 두리번거리며 얘기했다. 그 순간 탁용팔은 장비 옆에도 뒤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도 혼자 도망간 것은 아닐 테고 다른 일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다. 잠시 후 누군가 또 걸어왔다.


"뭐예요?"


“어 김준용 왔냐? 이 새끼가 장비 만지더니 장비가 뻗었어.”


“에? 근데 이 새.. 아니 이분 누구시더라.”


김준용 사원은 조립지옥 장비 담당 엔지니어다. 검은 톤의 피부에 원형테의 안경을 썼다. 둥근 테의 안경은 그를 스마트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애쓰고 있지만 무식한 그의 실체를 감추기는 힘들어 보인다.


“저는 조립지옥 고철수입니다.”


“아하. 이번에 통합돼서 K2에서 온 양반이네. 저는 김준용이라고 해요. 이 장비 공정 담당인 탁용칠, 탁용팔 동기예요. 저는 장비 담당이고요. 근데 이거 어쩌나 오자마자 사고를 치셨네?”


상황이 이러한데 같이 와서 장비를 만졌던 탁용팔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난 차근차근 다시 상황 설명을 했다.


“아니 닥치고 지금 내가 봤는데 너가 혼자 만지다가.. 어? 이렇게 장비 뻗은 거를.. 어? 내가 처음부터 직접 봤는데도 이렇게 발뺌하는 거야? 난 그게 기분이 나빠.”


정비사가 따지듯 물었다.


“철수 씨 정비사 형님 말이 맞아요? 이거 도와줄 사람도 없고 큰일이네. 그리고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으셔야지.”


그들은 나를 쉽게 놔줄 것 같지는 않았다. 때마침 탁용팔이 왔다.


“용팔, 어디 갔다 왔어? 나 혼자 지금 오해받고 있었어.”


“에? 무슨 오해요?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왔어요. 장비는 왜 뻗었어요? 아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선배가 뭐 더 만졌어요?”


정말 답답한 상황이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욕설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었다.


“그만하고 전문가들 왔으니 우린 나가요. 저기 정비사형님 그리고 준용이형, 상황이 이러하니 좀 이해해 주고, 잘 좀 부탁해. 또 들어올게."


“어휴 씨발. 알았어 나가봐.”


정비사와 김준용은 분을 삭이며 우리를 보내줬다. 우리는 그렇게 사무실로 이동했다.


“담배 한 대하고 가시죠.”


사실 난 비흡연자다. 후배가 무거운 표정으로 담배 타임을 제안했기에 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그런가 싶었다. 일단은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문을 열었다.


“철수 선배, 정신 똑바로 차리셔야 해요. 지금까지 회사 생활 어떻게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그래? 알았어.”


후배에게 들을 소리인가 싶었지만 참았다.


“선배 저녁 식사하셔야죠?”


어느덧 시간은 저녁 일곱 시 반이 되었다. 식당에서 밥을 주는 시간은 십 분밖에 남지 않았다. 근데 딱히 마감을 앞두고 급하게 식당으로 들어가서 식은 밥에 식은 반찬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난 마무리하고 퇴근하려고."


“벌써 퇴근하시려고요? 네. 뭐 암튼 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숙소로 혼자 걸어가며 만감이 교차했다. 이후의 회사 생활은 K2 공장이 그리울 정도로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이석수라는 팀장 대행에게 매일 불려 나가고 여러 명의 후배에게 돌아가며 혼났다. 탁용칠 사원은 매일 아침 나를 찾았다.


“선배 어제 언제 퇴근했어요? 여기는 그렇게 빨리 퇴근하는 곳이 아니에요.”


“그.. 그래? 알았어.”


“철수 선배, 좆같죠?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좆같아도 일해야죠. 여기는 그런 곳이에요. 좆같아도 도망가지 않고 일해야 하는 곳. 아니면 저기 처웃고 앉아있는 장도망처럼 도망 다니던지요.”


탁용칠 사원이 말했다.


“저 선배 나랑 비슷한가 보다. 키득키득. 퇴근 시간에는 도망가야 제맛이지.”


멀리서 어떤 여자 후배가 웃음 짓고 있었다.


장도영 사원은 150 정도의 키에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다. 사고 쳐놓고 도망 다녀서 라인에서는 ‘장도망’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웃음이 많다. 그 웃음과 애교로 언제나 위기를 넘기려고 한다.


“굿모닝. 얘들아 아침부터 뭐 이렇게 소란스러워. 다들 오늘도 힘내서 하루 잘 보내보자고.”


아무것도 모르는 권준현 대리가 출근하며 얘기했다. 근데 아마도 권준현 대리도 사실은 조금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어떤 선배가 얘기한 적이 있다. 짬밥은 그냥 먹은 게 아니다. 선배들이 보낸 시간들도 다 경험이다.


“아침 회의합시다.”


아침 회의가 시작되었다.


“저거.. 저거 장비 갑자기 멈춘 거 뭐야? 저.. 저거 때문에 물량이 조금 쌓여있었네”


이석수 부장이 어제 그 문제의 장비를 바로 지적했다.


“저거 어제 철수 선배가 고장 내고 도망갔데요.”


장도영이 얄밉게 고자질을 했다.


“쟤 또 저런다.. 쯧.. 쯧..”


후배들이 뒤에서 구시렁거렸다.


“고.. 고.. 철수, 이게 무슨 말이야? 사실이야? 서.. 설명을 해봐..”


이석수 부장은 흥분해서 되물었다.


“네 그게 사실은..”


“맞아요. 제가 봤어요. 저 선배가 고장 내고 도망가는 거. 장비를 뭐를 안다고 만져놓고는 잘 안되니깐 그냥 떠넘기고 나가더라고요."


장비 담당인 김준용 사원이 내 말을 끊고 얘기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처.. 철수 사원, 자.. 장비를 만졌어? 아.. 안 만졌어? 그.. 그것만 대답을 일단 해봐..”


“만졌습니다..”


“그.. 그리고 고장 났고, 그런 다음 밖으로 그냥 나.. 나갔고?”


“저 선배 그냥 나간 게 아니고 퇴근한 거 같더라고요."


탁용칠 사원이 얘기했다.


“뭐.. 뭐라고? 장비를 만졌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너.. 너는 정신머리가 있는 거야? 어.. 없는 거야? K2에서 뭐.. 뭐를 배웠어? 그.. 그렇게 일하라고 배운 거야?”


이석수 부장은 흥분해서 여러 가지를 따져 물었다. 뭐라도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이쯤 되었을 때는 이미 나는 병신이었다. 아마도 어떤 말을 조리 있게 했어도 병신 취급은 면하기 힘들 테다. 그렇다고 이렇게 조리돌림을 당하기에는 조금은 억울하다.


“파트장님 제가 잘 교육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신경 쓰게 해 드려 죄송하네요. 제가 K2에서 좀 더 보살폈어야 했는데 제 불찰이라고 보고요. 후배들도 적당히들 해줬으면 좋겠네요.”


구세주 권준현 대리가 나서서 말했다. 조리돌림을 당하던 내게 권준현 대리는 구세주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 그래, 다..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아침 회의에서의 도망 사건은 일단은 겨우 마무리되었다. 난 이들에게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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