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resh week 5
병가휴직 29일째. 첫 번째 상담소 수업이 있었다. 아침에 여유롭게 준비하고 서울로 향했다. 선릉과 정릉은 낯설었지만 평온한 분위기였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남자 몇 명, 대부분 여자들로, 모두 비슷한 나이대처럼 보였다. 수업 시간에 맞춰 해탈자의 분위기를 풍기는 선생님이 등장했다. 호흡명상, 바디스캔, 사바사나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누워서 하는 명상과 바디스캔이 편안했다. 슬픔에 관한 인사이드무비 중 약 30분 정도 잠이 들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좋은 분위기를 그냥 즐겼다.
병가휴직 30일째. 한밤중에 애증의 추리소설 '10번 교향곡'을 완독했다. 긴 이름들과 전문 용어들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몰입할 수 있었다. 범인에 대한 반전과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러나 범행의 동기로 보기에는 너무 잔혹한 살인 무기였다. 잘린 머리가 30초간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끔찍했다. 생각보다 중간 정도의 소설이었다. 최근 읽은 추리물 중에서는 '다빈치 코드'나 영국 드라마 '셜록'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오늘 속이 안 좋아 여러 번 화장실에 갔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괜찮은 듯하다.
병가휴직 31일째. 약속된 점심 모임이 있었다. 삼성역 3번 출구에서 늦지 않게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여전히 강남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에서 좋은 조언을 받았다. 이후 아내와 함께 별마당 도서관을 방문했다. 최고의 도서관이었다. 양재 더케이호텔에서 진행된 특가전을 방문해 쇼핑을 즐겼다. 60만 원을 쓰고, 원가는 320만 원 정도의 물건들을 구매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병가휴직 32일째. 늦잠을 잤다. 아내의 볼일을 보러 함께 다녔다.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에서 직원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명품 수선점은 까칠해 보였다. 가격도 비쌌다. 나는 혼자 볼일을 보는 편이지만, 아내는 함께 다니고 싶어 했다. 집에 돌아와 조금 쉬었다가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다가올 이별이 마음에 걸렸다.
병가휴직 33일째. 청주 식구들과 가족여행을 떠났다. 일찍 일어나 준비했지만 조금 늦게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형님과 커피를 마셨다. 항구를 구경하고 회를 구입했다. 펜션에 도착해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나는 그늘에서 책을 읽었다. 저녁에 바비큐를 했지만, 숯불에 고기를 굽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맛있게 먹고 회까지 함께 즐겼다. 과음으로 인해 숙취가 심했다. 악몽을 꾸기도 했다.
병가휴직 34일째. 아침에 일어나 김치찌개라면으로 숙취를 해소했다. 가족사진을 찍고 퇴실했다. 운전 중 장인의 안내를 받으며 공주에서 장어로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맛본 장어가 좋았다. 처갓집으로 이동해 자연산 새우를 먹었다. 약을 먹었지만, 속이 불편했다. 장인의 벌꿀주도 맛있었다. 귀가 길에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내가 단단히 화가 났다. 말없이 잠들었다. 나는 게임을 하다가 잠들어버렸다.
병가휴직 35일째. 냉랭한 집안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내와 몇 마디 나누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게임으로 마음을 달래 보았다. 서로 굶고 있다가 저녁에 아내는 맥주를 마시고 취한 것 같았다. 나는 간단히 식사를 했다. 아내는 덥다며 에어컨을 켜고 초저녁부터 잠들었다. 나는 '왕좌의 게임' 세 편을 보고 누웠다.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내일은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와야겠다.
지난 몇 주간의 일기를 돌아보며, 내 삶의 다양한 면모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정신 건강 문제로 인한 병가휴직은 내게 많은 시간을 선사했다. 이 시간을 통해 상담소에서 명상과 새로운 마음챙김 기법들을 배우고, 한때 미뤄두었던 독서에 몰두하며 내면을 돌아보았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따뜻한 추억도 쌓았지만, 때로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아내와의 불화나 일상의 소소한 불편함을 겪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다양한 감정의 파도를 경험했다. 명상 수업에서의 평온함부터 추리소설의 반전 속 긴장감, 가족여행에서의 즐거움, 그리고 일상 속 스트레스까지. 모든 경험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특히,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일상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와 마음속의 빈틈을 마주하면서, 내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 여정을 통해 깨달은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평온함도 불안함도 시간과 함께 흐르며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믿는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자신을 이해하며, 삶의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