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처럼 피할 수 없는 현실..
병가휴직 64일째.
정신을 맑게 하는 일곱 번째 주가 시작됐다. 드디어 심화반 수업이 시작됐다. 매주 목요일 오후 두 시, 이번에도 놓치지 말아야지. 그리고 욕망에 대한 명상과 인사이드 무비... 내 헛된 욕망들... 예전부터 최근까지 나를 괴롭혔던 것들. 아이폰 8 주문을 취소했다. 아이폰6도 아직 충분히 잘 돌아간다. 나는 휴직자인 만큼 사치를 줄여야 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야겠다. 저녁에 한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삶의 이야기, 즐거움을 찾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병가휴직 65일째.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게임을 하기로 계획했다. 아내가 약속이 있어서 혼자 라면과 밥을 맛있게 먹고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축구 게임으로 손을 풀고, 로봇대전에서 하나를 클리어하는 중에 아내가 돌아왔다. 로봇대전 하나를 클리어하고 용과 같이 플레이 중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주택 단지를 둘러봤는데 괜찮았다. 아내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요즘 몇 일째 다른 도시로 갈 날을 잡고 있는데, 이게 아주 스트레스다. 결론은 오늘 4일간 어떤 도시에 가 있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변동 가능성은 있다.
병가휴직 66일째.
늦잠 후 블로그 체험을 위해 근처 동네의 짬뽕집에 갔다. 짬뽕밥을 먹었는데 역시 진리다. 오후에는 상담소에서 기대와 실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에, 기대를 적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집에 가는 길에 원형 탈모 치료 주사를 맞으러 피부과에 들렀다. 앞뒤 다 맞았는데 여전히 엄청 아프다. 여섯 달 후에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병가휴직 67일째.
오늘은 야구장을 가는 날이었다. 아내가 예쁘게 도시락을 싸서 출발했다. 일찍 도착하여 자리를 잡으니, 경기 시작 즈음 김밥과 간식을 먹었다. 맛이 좋았다. 오늘 선발 투수는 조금 불안해 보였다. 출발은 좋았으나 결국 오늘 안타 10개를 맞고 2개만 치고 말았다. 1번 타자가 유일하게 안타 두 개를 기록했다. 상대 팀의 투수는 잘 던졌고, 우리 팀은 운이 나빴다. 0-2 패배. 씁쓸하지만 오랜만의 야구 관람은 좋았다. 승리를 보기 위해 또 가야 할까... 임신 초기라 그런지 좀 피곤해 보이는 아내가 걱정됐다.
병가휴직 68일째.
오전 내내 푹 쉬고, 늑대아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연락을 받고 씻고 출발했다. 닭볶음탕을 얻어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장인어른께서 골프를 배우시는 중인데, 나에게 요즘 놀면서 골프도 치지 않느냐고 물으셔서 조금 무안하고 불편했다.
병가휴직 69일째.
아침 일찍 아내가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잦은 소변으로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한다. 방광염이 의심된다고 해서 걱정이 된다.
병가휴직 70일째.
오늘 하루를 정리하자면 12시간 동안 게임만 한 것 같다. 축구 게임, 갓 오브 워, 용제로 이렇게 세 가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지만, 재미있다. 자기 전에 침실에서 무척 큰 나방을 잡았다. 뒷목이 당긴다.
처음에는 그저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에서 벗어나 조금 쉬면 다시 예전처럼 활기차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내면의 어두운 골짜기를 마주하게 됐다. 내가 채우려 애썼던 욕망들, 그 끝없는 소비와 집착이 오히려 나를 갉아먹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폰 8을 주문하고는 취소했다. 최신 기기가 주는 일시적인 만족감이 더 이상 내게 의미가 없었다. 아직 쓸 만한 아이폰 6을 손에 쥐고, 사치를 줄이기로 했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단순한 삶의 철학이 갑자기 마음에 와닿았다. 그저 조금 덜 가지고, 조금 덜 바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내 안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가끔 상담소를 찾아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려 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걸 다시금 배웠다. 그저 작은 기대를 품고 작은 기쁨을 느끼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그런 나를 조금씩 회복시켜 줬다. 그녀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야구장을 찾아, 비록 패배를 보았지만, 오랜만에 느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위안이 됐다.
그녀의 임신으로 인한 피로함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작은 행복을 찾았다. 때론 게임 속 가상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며 현실의 무게를 잊으려 했지만, 그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진 않았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 속이 불편한 감정들, 그리고 밤늦게 침실에서 잡은 나방처럼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