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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Sep 04. 2024

소소한 일들이 쌓여가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를 일으켜준 것들..

병가휴직 71일째. 오늘은 상담소에서 명상 입문 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낮에는 무척 더웠다. 길을 걷는 내내 더위가 느껴졌고, 아내도 바쁜 하루를 보낸 듯하다. 병원에 다녀오고, 면허를 갱신하고, 김치를 가지러 다른 곳에 다녀왔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좀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죽음의 순간에 집중하며 병원에서 편안한 노인이 된 나 자신을 그려보았다. 아내와 아들이 내 곁에 있었고, 그 밖의 인물들은 희미하게 보였다. 아들이 '애썼다'고 말해주었고,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을 두 번 느끼며 아늑한 심연의 늪에 빠져들었다. 마지막까지 인자하고 친절하게 명상의 길을 안내해 준 명상 지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이번 리프레시 마인드 기본반은 정말 잘 들었다고 생각했다.


병가휴직 72일째. 오늘은 건강검진 날이었다. 오전 여섯 시에 일어나 장 세척 약을 마시며 화장실을 여러 번 다녀왔다. 속이 불편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지난밤 걱정을 많이 했는지 악몽을 꿨다. 검진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되었다. 아내가 함께 병원에 가주었고, 내시경 차례를 기다리며 긴장했다. 마취약을 맞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간호사가 내 뺨을 두드리고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니 한 시간이 찰나처럼 지나갔다. 다행히 결과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복죽을 사서 맛있게 먹었고, 한우 업진살을 구워 먹었다.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인지 새삼 느꼈다.


병가휴직 73일째. 종일 자고 나서 열두 시에 일어나 라면과 밥을 맛있게 먹었다. 이제 컨디션이 거의 회복된 듯하다. 오랜만에 건담을 봤다. 역시 명작이었다. 조금씩 조립하던 자쿠2를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사이즈를 보고 만만하게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저녁을 먹을 때 손이 떨릴 정도였다. 저녁 후에는 아내와 동네를 산책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거품 샤워를 하고 나서는 '고쿠리코 언덕에서'를 감상했다. 미야자키 아들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쁜 그림과 움직임이 인상적이었지만, 뭔가 가벼워서 아쉬운 느낌이었다. 자주 언급된 한국전쟁에 대한 묘사가 조금 씁쓸했다.


병가휴직 74일째. 오랜만에 면도를 하고, 대략 50일 만에 미용실을 방문했다. 서비스는 평범했지만, 실력은 괜찮았다. 한 번 더 방문할 의사가 있다. 아내는 편한 옷을 구매한 후 나와 합류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다녔을 뿐인데도 둘 다 녹초가 되었다. 체력이 저질인 듯했다. 10월에는 운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가휴직 75일째. 친구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친구의 아기가 그를 닮아서 신기했다. 바쁜 친구를 보며 나도 저렇게 집안일로 바빠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기도 하고,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받으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아기의 태명은 '꼬부기'로 잠정 결론 내렸다. 현실적으로 지금 살고 있는 18평 아파트가 맞겠지만, 아내는 빚을 내서라도 좀 더 넓은 아파트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병가휴직 76일째. 점심때 기상했다. 식사 후 바로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는 자쿠2 조립을 다시 시작했다. 습식 데칼 작업을 처음 해보는데 눈알 부분이 찢어졌다. 다행히 크게 티는 나지 않았다. 대략 두 시간에 걸쳐 상반신을 완성했다. 저녁에는 블로그 협찬을 받아 중식을 먹었는데, 쟁반짬뽕은 별로였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갔는데, 그곳의 아이스크림은 강추할 만했다. 배부른데도 또 잘 먹었다. 오늘의 마무리로 게임 몇 판을 했는데, 계속된 연패 후 겨우 승리했다. 새벽 두 시에 마무리하며 재야의 고수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병가휴직 77일째. 열 시에 기상한 후 느긋하게 쉬다가 라면과 밥을 먹었다. 라면이 거품이 엄청나게 많이 올라와서 찬물을 조금 넣었더니 간이 약해졌다. 자쿠2 조립을 시작했는데, 저녁 먹기 전에 완성했다. 어렵지만 멋지게 완성된 것 같아 뿌듯했다.




휴직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여러 가지를 겪으며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낮의 무더위 속에서 명상을 하며,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생각해 보았다. 병원에서 아내와 아들이 곁에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삶의 끝자락에서 느낄 고요함을 마음에 그렸다. 죽음이란 결국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그렇게 나는 나름의 평온을 찾았다.

한편, 건강검진 날에는 오랜만에 병원을 찾으며 속이 불편했다. 아내가 옆에서 힘이 되어 주었고, 결과가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검진 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작은 행복을 누렸다. 휴직 동안 나는 자쿠2라는 작은 로봇을 조립하며 시간을 보냈다. 조립의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내 손을 떨리게 할 정도로 집중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작은 피규어를 완성했을 때 느낀 성취감은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감정이었다.

일상 속에서 아내와의 대화, 함께한 산책, 그리고 가벼운 영화 감상까지. 소소한 일들이 쌓여가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체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작은 성취와 소소한 행복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중이다. 이 휴직의 날들은 나에게 휴식이자 회복의 시간이었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되찾는 여정이었다. 비록 이 시간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 기억들은 나를 지탱해 줄 중요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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