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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Oct 30. 2024

작은 여유가 나에게는 새로운 휴식과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 하며 나는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거쳐갔는지도 모른다..

병가휴직 118일째. 간만의 숙취로 열두시가 넘어서 기상했다. 아내가 배고파서 삐친 얼굴로 날 쳐다봤다. 결국 아내를 달래주기 위해 라면을 끓여주고 치웠다. 그리고 소화를 시킬 겸 대청소를 했다. 오래간만에 플스도 즐겼다. 3~4시간 동안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아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랫동안 읽던 철학 책을 완독 했는데,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그림책이었다. 종종 다시 꺼내 보고 싶을 것 같다. 추가로 ‘마음의 숲을 거닐다’를 한 챕터 읽다가 새벽 세시에 잠에 들었다.


병가휴직 119일째. 열 시쯤 일어났고, 아내는 침대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철학 책의 주석까지 다 읽었는데, 디테일한 주석과 정성스러운 스케치들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은 아내와 함께 메로구이로 해결했다. 특유의 깊은 맛이 느껴졌고, 양은 조금 아쉬웠지만 밥을 리필해 배를 채웠다. 소화를 시킬 겸 골프장으로 향했고, 약간 맞는 듯싶다가도 체력이 떨어져 감을 잃었다. 이후 아내와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쫄면을 해 먹었다. 다소 손이 가는 음식이지만 아내가 맛있게 먹어주어 뿌듯했다. 저녁에는 김광석에 대한 영화를 무심코 틀어 보았는데, 그의 삶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그를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병가휴직 120일째. 열 시쯤 일어났고, 열한 시쯤 아내가 블로그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아내가 카레를 만들어 주었고, 내가 장난을 조금 쳤더니 삐치길래 잘 달래주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소화를 시킬 겸 옷장을 정리했다. 여름 동안 안 입었던 옷을 꺼내어 가을, 겨울용 옷으로 채웠다. 버릴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리 후 깔끔해진 옷장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내도 덩달아 옷 정리를 시작했고, 이후 낮잠을 자는 동안 나는 공을 쳤다. 요즘 공을 치면서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 같아 뿌듯했다. 저녁에는 가까운 곳에서 맛있는 소고기전골을 먹고,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병가휴직 121일째. 열 시 반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공을 쳤다. 앞으로 이틀 정도 못 칠 것 같아서 무리하게라도 연습했다. 그때 아내에게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전화가 왔다. 여러 번 시도 끝에 통화가 되었고, 뉴스에서 지진의 크기를 확인하니 경각심이 생겼다. 자연의 힘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내가 하루에 두 끼를 챙겨주었지만, 피곤해 보여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 후 책을 읽으려 했으나 아내가 TV를 보고 싶어 해서 나는 침실로 가서 조용히 독서를 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은 내 이야기 같았고, 책 속의 메시지에 몰입하여 많은 위로를 받았다.


병가휴직 122일째. 아침 일찍 알람 소리에 일어났고, 오늘은 리프레시 마인드 심화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 아내가 터미널까지 바래다주었다. 오늘 수업 주제는 장자의 소요유였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후에는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를 끝까지 읽고, 책에서 얻은 지혜를 통해 자존감을 조금 더 높이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병가휴직 123일째.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침구를 정리했다. 아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아침을 보내다, 그녀가 신청한 책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서평단에 당첨되어 기뻐했다. 점심은 오랜만에 라밥을 먹고, 정기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이후 마음상담소에서 일상과 휴복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는 음악회를 보러 갔는데, 예상보다 공연이 훌륭했다. 무명의 배우들이 공연을 펼쳤고, 감동과 재미를 느꼈다. 다만, 옆에서 의자를 차는 아이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공연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집에 와서 오른쪽 가슴이 묵직하게 아팠지만, 자고 나면 나아지길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병가휴직 124일째. 아침에 일어나 뒤척이다 침구를 정리하고 오래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주말에 차려입고 가는 곳이라 설렘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예식이 끝난 후 한 친구와 티타임을 가지며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 하루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내일은 조금 더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리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일상이 달라지면서 나의 생활 패턴도 조금씩 변해갔다. 평소라면 출근으로 분주했을 아침 시간에 책을 읽고, 여유로운 점심을 먹으며 아내와 대화했다. 이런 작은 여유가 나에게는 새로운 휴식과 같았다. 하루는 집안 곳곳을 정리하며 답답했던 마음을 정리했고, 가끔은 골프를 치며 머릿속을 비웠다. 또 오랜 친구들과의 재회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그들로부터 얻는 에너지가 마음의 큰 위로가 되었다.

매주 상담소를 찾으며 마음의 방향을 잡아갔다. 장자의 소요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기도 했다. 상담사는 내가 선택한 길과 그 안에서 느낀 감정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안의 복잡한 생각을 잠재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짐을 느꼈다. 서점에 들러 철학 책을 집어 들고, 혼자 사색에 잠기는 순간이 늘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며 나는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거쳐갔는지도 모른다.

아내와 함께하는 일상 속 사소한 다툼조차도 이제는 소중하게 다가왔다. 마음 한편에 있는 불안을 조금씩 덜어내며, 나는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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