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모음집 <방황하는 소설> 정지아 작가
그녀의 장편 베스트셀러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지내다가 뜻밖의 단편소설을 먼저 읽었다. 작가와 뜻밖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제목부터 철학적인데 내용과 결말까지 철학에서 시작해서 철학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 철학을 읽는데 전혀 어렵지는 않았다. 아니면 어려운지 쉬운 지조차 가늠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줄거리 :
주인공은 갑자기 본인이 왜 이 장소에 있는지 게다가 본인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한다. 직원이 주인공을 알고 있는 분위기를 봐서는 단골 카페에 있는 것 같은데 모르는 척 여러 가지로 떠봐도 도저히 기억을 못 한다. 지갑에도 흔한 신분 확인증이 없다. 심지어 스마트폰은 초기화되어 있다.
집도 아마도 카페 근처 같은데 하나도 기억을 못 하니 찾을 방법이 없다. 결국 파출소를 찾아서 기억을 잃었다고 하소연한다. 이럴 수가 지문도 없다. 주변 감시 카메라를 조사하기로 한다.
아파트, 동, 호수를 찾기까지 함께 기억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문장을 해석했다. 단편소설을 읽으며 나도 마치 기억 잃은 주인공이 되었다.
느낀 점 :
나조차도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사라진 채로 기억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공간의 익숙함이 나를 증명할지, 나를 아는 사람을 찾아 질문을 해봐야 할 것인지, 당분간은 그저 방황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된다.
작가의 글은 매우 잘 쓰였고 서사의 완성도가 높았다. 문장의 가독성이 좋고 흡입력이 있어서 자동으로 단락 속에 빨려 들어갔다.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어낸 기분이다. 첫 문장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부터 마지막까지, 끝이 잘 다듬어진 칼같이 잘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