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 실망했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 문상훈 저

by 고매

저는 유독 이 말을 싫어했습니다.


"실망했다"는 말이요.


예전에 습관처럼 실망했단 자주 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말을 들으면 마치 들어선 안 되는 말을 들은 것처럼 놀랐어요. 그 사람이 실망해선 안 되는 수많은 이유를 납득시켜야 했어요. 예전의 기대치만큼 원상 복구해야 하는 듯한 책임감을 느꼈나 봐요. 사실 누군가가 내게 실망하든 실망하지 않았든 나란 사람은 그대로인데.


예전에 회사에서 작은 실수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전 그 분야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다가 처음 실수를 한 거죠. 그때 아무도 제게 직접 뭐라고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기분이 너무 안 좋은 겁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들이 제게 실망할 것 같았어요. 나라는 사람에게 기대치가 높았을 텐데 그걸 무너뜨렸을 거란 생각이 든 겁니다. 그 감정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는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실 이제 머리로는 타인의 실망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단 걸 알아요.

단지 그걸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왜 실망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지요.

그런데 최근 읽은 책에서 마침 이 주제를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실망은 그 사람에 대한 업 앤 다운 게임에 불과하다.
나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업 다운으로 영점을 향하는 것뿐인데, 나는 상대가 외치는 다운이 무서워 내 숫자를 바꿔갔다. 나를 너무 좋게만 보는 것은 나쁘게만 보는 것만큼 안 좋다는 것을 몰랐다. 나를 한없이 좋게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의 나보다 좋게 보는 것은 내버려 두고 나쁘게 보는 것을 바로잡기에만 급급했다. 서로에게 현명하게 실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중에서


실망은 그저 업 앤 다운 게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게다가 그 숫자는 내가 정할 수 없습니다.

그 평가를 하는 주체는 내가 아닌 '상대'입니다. 내가 100점을 받고 싶어서 한 행동에 상대가 10점을 줬다고 해서 그를 설득할 필요는 없는 거죠. 그 점수 자체가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좀 낮은 점수를 받으면 어떤가요?


이어지는 문장은 실망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더 날카롭게 말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실력 있는 사람의 조건 중 하나는 내 실력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요. 오히려 상대방을 실망시켰을 때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내보일 수 있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과대평가라는 외투를 벗고 나면, 가리고 있던 나의 일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일지 모릅니다.


이는 비단 타인의 실망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도 실망하잖아요.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에 대한 기댓값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오히려 더 정확한 값을 위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자책감이 들 때, 스스로에게 실망했다며 마냥 좌절하기보다는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됩니다.

어쩌면 내가 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했을지 모른다고.

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다음번에 더 잘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오늘도 글을 쓰며 다짐합니다.


'실망'이란 말에 놀라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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