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가 '작업'의뢰 받은 이야기
인스타그램으로 그림계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DM으로 작업을 문의하시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요. 프로작가도 아니니 당연히 그 ‘경우’도 몇 번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작업문의는 DM 주세요’라고 친절히 써놓기는 했지만 막상 제 의도는 작업 수주가 아닙니다. 일면식도 없이 불쑥 ‘그려주세요’라고 하시는 분들께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해야 하는 부담도 적어지고, ‘저, 제 그림으로 작업의뢰 받는 사람이거든요’하는 식의 허세로 작용할 때가 더 많습니다. 쿨럭.
언젠가 DM으로 남자고등학생(프로필 사진이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습니다.)이 작업문의를 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저는 취미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라서요’라며 거절했는데도 계속 요청을 하시더군요.
“그럼, 어떤 그림을 원하시는지 한 번 말씀이라도 들어볼께요.”
가족 사진을 한 장 보내시더군요.
“저는 인물을 못 그리는데요...”
쿨럭.
제가 누군가에게 선물이 아닌 ‘의뢰’를 받고 그림을 그린 것은 단 한 번뿐입니다.
‘오느른’ 아니 오늘은, 저의 첫 작업의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말씀드릴께요.
21년 8월 말 김제의 ‘오느른’오피스에 방문했습니다. MBC 최별 PD님이 김제의 낡은 집을 4,500만원에 사들여 고친 후 2년째 ‘시골살이’를 소재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곳이 ‘오느른’ 오피스입니다.
https://www.youtube.com/c/onulun
주말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느른 유튜브를 즐겨보던 아내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차를 돌려 방문했습니다.
매월 예약을 하고 방문하면 PD님들이 시원한, 혹은 따뜻한 커피와 함께 작은 다과를 무료로 준비해 주시는데요. 저희는 예약도 안 하고 밖에서 둘러보고만 있었습니다. 비가 와서 손님도 별로 없으니 들어오셔서 커피 한 잔 드시고 가시라는 PD님의 친절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적한 시골 읍내, 비워져있던 2층 짜리 건물을 개조해 아래층 한쪽에서는 PD님들이 쪽책상에서 영상을 편집하고, 손님이 오면 커피를 준비하고 안내합니다. 손님들은 다른 한 쪽 응접실에서 전시된 작가님들의 작품도 보면서 차를 마시고 난 후 작은 싱크대에서 직접 접시를 닦아 치우고 나가시더군요.
크라프트 종이컵에 담겨진 따뜻한 원두커피를 마시다가 ‘컵드로잉’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지고 다니는 텀블러에 커피를 옮겨담고 빈 컵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후 5시, 마지막 손님이었던 저희는 오피스를 청소하시던 PD님께 종이컵을 건넸습니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저... 이거 선물이에요”
“우와~! 이거 저희 [오.피스] 그리신거에요?”
다정한 시간을 선물받은 보답으로 컵드로잉을 드리고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남자 PD님께서 인스타그램 DM으로 ‘작업 의뢰’를 문의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PD님... 저 곰아재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호탕한 목소리의 남자 PD님께서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셨습니다. 제가 드린 컵그림의 펜드로잉처럼 김제 죽산마을을 그려서 가을에 수확할 쌀포대에 넣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아, 그런데 저는 전업작가도 아니고 취미여서요...”
“그래도 작가님이 그려주신 종이컵 그림이 저희가 생각하는 컨셉과 잘 맞을 것 같아서요.”
“저야 영광이죠. 그런데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 시간이 충분할지 걱정되고, 제 실력이 모자라서 방해가 될까봐 걱정인데요.”
‘이거 괜히 깐깐한 방송국 (분)들에게 혼나는거 아닐까?’ 살짝 겁도 났지만, 해보고 싶다는 욕심, 30만 유튜브 채널에 나오면 제 인스타그램도 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길게 고민하지 않고 수락했습니다. 전체 일정도 물어보고, 시안에 넣을 참고 이미지도 받았습니다.
“근데, 작가님. 혹시 비용 같은 건 어떻게 책정하고 계신지...”
“아.. 저는 돈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요. 저희 와이프가 워낙 오느른 팬이어서 그냥....”
“그래도 저희가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진행할 때는...”
“아... 저도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금전적인 보수를 받는 것은 조심스러워요. 그냥 나중에 얘기하시죠. 정 신경 쓰이시면 제 그림이 들어간 쌀 한포대 주시는 걸로 하죠 뭐.”
유쾌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마을 집 사진 여러 장과 함께 PD님의 시안을 받았습니다.
앞부분에는 벼가 익어가고, 뒤로는 마을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였습니다.
갈색 크라프트 쌀포대에 채색이 아닌 단색 ‘펜드로잉’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찾아낸 참조 이미지를 보내드리고, 마침 다음날이 휴무일이라 직접 PD님들을 만나 미팅을 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따라 나선 아내와 함께 오느른 최별 PD님과 이야기를 마친 후 인증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림 그릴 집들을 안내받아 직접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촬영 당(?)하기도 했죠. 즐겁고 설레는 경험이었습니다. 구독자수 30만명이 넘는 유튜브 오느른 채널에 제 그림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죠.
집으로 돌아가 바로 습작을 그렸습니다.
마을 집들이 죽 늘어선 좁은 도로 앞에 넓은 논이 펼쳐져 있고, 제일 앞에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미지가 부각되는 쌀포대를 상상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슬슬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논이 넓게 펼쳐진 풍경은 약간 높은 곳에서 바라봐야 하는 시점이고, (앞에서 바라본다면 제일 앞에 있는 벼만 보이니까요.) 그 안에 들어가는 집들은 바로 앞 정면에서 보는 시점이라 두 그림이 합쳐지면 이상한 구도가 됩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구도의 그림이 되는 것이었죠.
눈 앞에 넓게 펼쳐진 논의 저 멀리에 조그만 집들이 어깨를 붙이고 죽 늘어서있는 풍경이거나, 제일 앞에 커다란 벼가 앞을 가로막고 그 뒤로 집들이 작게 늘어서야 하는 구도라면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마을 집들을 너무 작게 그려야 했거든요.
게다가 마을 집들을 8개에서 10개를 그리기로 했는데, 어림잡아 그려서 주욱 늘어놓았더니 100cm가 넘었습니다. 10kg 쌀포대의 폭은 50cm 밖에 안되는데 말이죠.
이 문제를 설명하는 것부터 어려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시켜드리기가 어렵더군요. 직접 습작을 늘어놓고 사진을 찍어 설명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조금씩 의사소통의 과정이 더뎌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호탕하게 통화하던 PD님의 목소리도 조금씩 낮아지고 통화 간격이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 시간이 모자랄텐데...’하는 걱정에서부터 ‘아.. 작업비 받았으면 진짜 골치 아팠겠다’하는 안도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주인공인 ‘집’을 그려놓으면 다른 배경은 적당한 이미지로 편집하거나 이후에 따로 그려서 편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집들의 크기가 제각각이었지만 제일 먼저 습작을 다시 그렸습니다.
왜 또 습작을 다시 그렸냐고요?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마음이 기준, ‘작업’은 의뢰자의 눈이 기준입니다. ‘작품’은 마음에 안 들어도 제가 끝이라고 선언할 수 있지만, ‘작업’은 어렵게 그린 결과물이 의뢰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상의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합의한 후에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책을 통해서, 혹은 회사 디자인팀의 업무진행 과정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작품’이어도 뜻 깊은 선물이나 전시회에 출품하려면 여러 번 습작을 그리면서 공을 들이게 되니 ‘작품’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이 걸리게 됩니다.
그림을 안 그려본 분들은 습작이나 기획 등의 과정을 잘 모르실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그림이어도 ‘이 그림 나한테 0만원에 팔아’라는 말을 쉽게 꺼내시면 안 됩니다.
아마추어 작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작품’에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들인 시간만큼의 최저임금과 재료비는 고사하고 액자 값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보다는 선물하거나, 추억으로 소장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작업과정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두 번째 습작을 통해 사진으로 찍은 집들의 문 크기를 기준으로 어느 정도 집들의 전체 크기를 맞추었습니다. 가로 1미터로 아코디언처럼 죽 늘어나는 스케치북에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하는 위험이 있어서 한 장 한 장 따로 그리는 것이 덜 위험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개별 ‘디자인’이 아니라 제 작품을 알리고 싶은 욕심에 옆으로 길게 늘어나는 독특한 스케치북에 그렸습니다. 안 하던 연필 밑그림도 차근차근 그린 후 덧대어 펜으로 그렸습니다.
총 작업시간 13시간, 완성된 그림을 나눠서 스캔해서 보내드렸습니다.
다행히 포대 인쇄작업을 할 업체 사장님과 직접 의사소통을 하면서 조금씩 진전이 있었습니다. “디자인을 아시는 분이어서 다행입니다”라는 업체 사장님의 한 마디가 왜 그리 뿌듯하던지... 그동안 어쩔 줄 모르고 PD님께 똑같은 이야기만 했던 저의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몇 주 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처음 이야기한 기한을 넘겨도 연락이 없자 소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 그림이 적당하지 않은가? 다른 디자인으로 바꿨나 보다.’
이 정도 상황까지 계산하고 수락한 작업이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 체념하고 있을 때 다시 호탕한 웃음의 PD님의 연락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잘 지내셨죠? 이제 작업이 거의 끝나가서요”
“예?... 정말요? 저는 연락이 없으셔서 제 그림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변경되나보다 하고 생각했었어요”
“아니에요. 벼를 수확하자마자 포대에 넣어야 하는 게 아니더라구요. 벼를 말리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구요. 이제 거의 작업이 끝나서 시안 보여드리려구요.”
3개월만에 제 그림이 들어간 오느른 쌀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쌀 한 포대를 주문해서 받아들고 감격했습니다.
‘오~!’
뿌듯해집니다.
처음 기획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제 그림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제 그림이 들어간 이야기도 네이버 쇼핑몰과 오느른 유튜브 채널에 실렸습니다.
인스타그램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행복했습니다. 그제서야 주변에 [오느른] 팬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은근히 기대했던 오느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플랫폼이 달라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더군요. 생각해보면 엄청난 채널 구독자수를 가지고 있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팔로워가 적은 유튜버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돈을 받고 예술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간접경험하는건가?’라는 생각도 했죠. 작업물을 받았을 때 보람이 이전의 수고를 싹 지워주더군요.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방송국 (분)들’ (괄호안에 다른 한 자를 써서 상용구로 쓰곤 하시죠?)이란 단어도 쓸 뻔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직접 쌀을 키워 포대에 담긴 쌀을 안고 감격해 하던 최별PD님처럼 저도 쌀포대를 안고 감동했습니다.
쌀 판매가 시작되고 다시 PD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작업비는 계속 거절했습니다.
처음 작업의뢰를 하셨을 때 작업비 대신 나중에 제 그림을 오피스에 전시하고 구매 희망자가 있다면 판매하는 것으로 약속했었거든요. 결국 적지 않은 금액의 ‘출연비’가 입금되었습니다. (유튜브 영상에 제가 30초 정도 나오긴 합니다. 쿨럭)
저작권 확인도 필요없으니 오느른에서 얼마든지 제 작품의 이미지는 사용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제 ‘작품’을 방송화면에 사용하시려고 할 때마다 꼭 확인전화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또 그때마다 어깨가 으쓱 올라가면서 어느 영상에 나올지 한껏 기대를 하게 됩니다.
펜드로잉만 했던 ‘작업’물에 몇 달이 지나고, 해를 넘겨서 ‘채색’을 했습니다. 집들 뒤에 나무를 그려넣고, 전봇대와 전선들로 집들을 연결하여 완성했습니다. 예쁘게 액자에 넣었더니 더욱 멋져 보입니다.
다음주에는 수리를 끝내고 5월에 다시 오픈하는 오느른 오피스로 찾아가 제 그림을 어디에 걸어두면 좋을지 이야기해봐야겠습니다. 작품 가격은 조금 높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 팔려도 많은 분들이 오느른 이야기를 하면서 제 그림도 오랫동안 감상해 주실테니까요.
혹시 제 ‘작품’이 판매되면 그 금액으로 컬러링 엽서를 만들어 오느른 오피스에 방문한 손님들이 직접 채색도 하고 가져가실 수 있게끔 준비해드릴 생각입니다.
어쨌든 작은 컵드로잉 선물로부터 시작해 저는 즐거운 추억을 얻었으니 더 많은 분들에게도 나눠드리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