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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Nov 19. 2022

콩을 수확하며 드는 생각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

<4월 18일 콩 새싹>

11월 19일, 콩을 수확했다. 약 6개월의 동거가 끝났다. 지난 4월에 새싹이 갓 흙에서 나왔을 때는 검은 껍질을 머리에서 벗겨내지 못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흙에서 올라온 새싹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도 발도 없는데 저 검은 껍질을 머리에서 어떻게 벗겨내지 싶어 걱정을 했다. 오지랖이 발동해 내 손가락이 새싹의 머리까지 닿았으나 다행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었다. 귀여움을 참기가 힘들었지만 오냐오냐 키우지 않으려는 내 나름의 애씀이었다. 연약하디 연약한 것이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더니 결국은 검은색이 매력적인 콩알을 낳았다. 

<11월 19일 갈색 콩꼬투리>

쌀쌀한 가을 아침, 다 큰 콩에서 수분기 없는 콩잎이 하나 떨어졌다. 손으로 만지니 바스락거리며 부서졌다. 통통한 콩알 하나를 만들기 위해 뿌리와 줄기부터 시작해 꽃과 잎 그리고 콩꼬투리가 힘을 합쳤다. 몸에 있는 모든 수분을 콩알로 집중시키고 나머지는 조금씩 말라갔다. 솜털 보송보송하던 콩꼬투리도 빛을 바랜 갈색으로 변했다. 딱딱한 껍질이 여태 애쓰고 살았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콩을 수확해야 하지만 콩꼬투리가 마음에 계속 걸려 줄기에서 떼내지 못하고 하루 이틀을 미뤘다. 하루라도 세상을 더 봤으면 하는 마음에 욕심을 부렸다. 이미 갈색이 다 된 콩꼬투리를 못 본 척하고 아직 푸른 빛깔이 있는 것을 핑계 삼아 수확의 시기를 늦추고 있었다. 떨어져 바스러진 잎을 만지며 오늘은 수확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콩을 따고 나면 이제 정말 추운 겨울이 시작될 것만 같아 한기가 느껴졌다. 콩을 키운 이유는 콩을 수확하기 위해서였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 콩은 그 존재만으로도 함께 있을 이유가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에는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키워야겠다고 허풍을 떨었다. 


<콩꼬투리 깔 준비 완료>

조심스럽게 콩꼬투리를 떼어냈다. 내 손에 한 줌 가득이다. 하나를 잘라 보았다. 콩꼬투리 속이 뽀얗다. 빛바랜 겉모습과 상반된 뽀얀 속살을 보니 마음이 찡하다. 각 콩알마다 방이 있다. 선도 그어놓고 나름의 규칙이 있어 보인다. 끝까지 콩알을 보호하려는 콩꼬투리의 본능이 아닐까 싶었다. 분명 콩알을 수확하는 시간인데 계속 내 눈에 콩꼬투리가 밟힌다. 나도 이제 나이가 제법 들었다는 뜻일 것이다. 가을이 뿜어내는 갈색 속에 부모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고 어린 조카를 생각한다. 콩꼬투리의 딱딱한 촉감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잘 익은 삶을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예쁘게 딱딱해지고 싶어 조심스레 다시 한번 만져본다.

<콩꼬투리 속에는 방이 잘 구분되어 있다.>

꼬투리 속 콩알의 색이 유난히 더 검게 보인다. 통통한 콩알은 안전하게 잘 자랐다. 각자 배정받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세상을 향해 나올 준비를 끝낸 듯하다. 조심스럽게 콩알을 꼬투리에서 떼어냈다. 내 손에 매끄러운 촉감이 전달된다. 콩알의 딱딱함은 단단함으로 연결된다. 꼬투리의 부서질 듯한 딱딱함과는 다르다. 콩꼬투리가 콩의 보호를 받아야 할 듯한데 삶은 반대로 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인가 보다.


<수확한 콩. 매력적인 검은색>

콩알을 모았다. 검은 빛깔이 매력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확한 콩을 먹진 못할 듯하다. 잘 보관해뒀다가 내년 4월 다시 화분에 심어야겠다. 삶은 돌고 돈다. 콩을 보니 그 속에 콩꼬투리가 보인다. 내리사랑이란 말의 참의미를 알 것 같다. 타인에게 바라지 않고 마음을 다해 주는 사랑.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나. 조금씩 수분끼 없어지는 내 피부를 보며 생뚱맞게 좀 더 좋은 영양크림을 발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열매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 모습이 보여서 억지로 시간 좀 벌자는 심뽀가 아닐까 싶다.

<할 일을 다 한 콩꼬투리>

콩을 수확하며 마지막은 다시 콩꼬투리로 돌아왔다. 힘없이 속살을 보이고 있지만 편안해 보인다. 해야 하는 일 다하고 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너는 무엇을 위해 그리 열심히 살았냐고 묻고 싶다. 젊을 때 즐기면서 살면 더 좋지 않았겠냐고도 물어본다. 꼬투리는 말이 없다. 그저 편안한 느낌이다.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어 꼬투리를 손으로 잘게 부숴 가루로 만들어 흙에 뿌려두었다. 쥐뿔도 모르는 가짜 농부지만 흙과 섞여 또다시 태어날 콩을 기다리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콩 수확이 끝이 났다. 친하게 지냈던 콩이 눈에 없으니 서운하다. 겨울이 벌써 외롭게 느껴지지만 겨울이 있어야 봄이 다시 온다는 것도 안다. 그래, 겨울은 겨울 나름의 맛이 있을 것이다. 아직 다 지나지 않은 가을과 오고 있는 겨울 사이에 콩을 수확하며 생각한 것을 글로 남긴다. 평화롭고 외로운 주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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