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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Oct 03. 2023

작가 번역가 그리고 독자

조지 오웰 <동물농장> 필사 중

소설을 읽으면 보통 저자의 시선으로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나 상황을 보게 된다. 책과 나 사이에서 작가가 렌즈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농장>은 좀 다르다. 마치 조지 오웰이 내 뒤에서 농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동물들은 스스로 위기에 빠진다. 나는 그들이 놓치는 한 마디의 말이 아쉬워 제대로 잘 들으라는 경고의 뜻으로 손사래를 쳐본다. 그런 나와 동물들을 작가는 그저 쳐다본다. 감정 하나 없는 그의 시선은 그림 하나 없는 책과 닮았다. 동물들은 스스로 농장의 주인이 되었지만 작가의 냉정함과 나의 무능력함 때문에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더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듯했다.


<동물농장> 원서를 필사하면 조지 오웰이 묘사한 농장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영어 특유의 논리 구조는 작가의 차가운 시선을 뒷받침해 주는 좋은 도구다. 먼발치 떨어진 곳에 있는 조지 오웰이 문체 위에 그대로 나타났다. 지금은 한참 돼지 스노볼이 농장의 기계화를 위해 풍차 건설을 계획 중에 있다. 연구하고 개발하여 좀 더 발전된 형태의 농장을 경영하고 싶은 것이다. 분필로 바닥에 풍차 설계도를 그리며 열심히 킁킁거렸다. 다른 동물들도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스노볼의 연구가 경이로워 보여 매일 구경을 갔다. 나도 동물들과 함께 스노볼의 설계도를 구경하다 문득 한국어 번역판에는 이 상황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지 궁금해졌다. 두 언어 사이의 차이가 동물농장을 다르게 보여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글 번역본을 찾아보았다.


'심지어 암탉과 오리들도 구경을 와서는 분필로 그려진 그림들 밟을까 조심하느라 애를 먹었다.'

Even the hens and ducks came, and were at pains not to tread on the chalk marks.

<원서와 한글판 차이>

동물들이 스노볼의 설계도를 구경하는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원서에 적힌 the chalk marks(분필 자국)는 '분필로 그려진 그림들'로 번역되어 있었다. 'mark'와 '그림'은 분명 뉘앙스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꽤 적절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농장>은 풍자우화이기 때문이다. 설계도가 낯선 동물들이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는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특히 글자를 익히지 못한 동물들에게는 복잡한 부분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설계도를 더욱 단순하게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번역가는 'mark'라는 다소 딱딱한 느낌의 단어를 '그림'으로 바꿔 번역하여 동물들이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원서와 한글 번역본을 비교해 보며 조지 오웰과 번역가 도정일의 생각을 추측해 보았다. 원서와 한국어 번역본은 같은 책 다른 느낌이었다. 작가와 번역가 그리고 내가 함께 모여 독서 토론을 하는 듯 흥미진진했다.


'풍차가 있건 없건 삶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쁘게 굴러갈 것이라 그는 말했다.'

Windmill or no windmill, he said, life would go on as it had always gone on-that is, badly.


스노볼의 풍차 건설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유일한 동물인 당나귀 벤자민의 말이다. 원서에는 'badly(나쁘게)'를 강조하기 위해 이를 문장 제일 마지막에 두었다. 벤자민의 회의적인 세계관을 잘 보여 주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어 번역판에는 '나쁘게'가 문장 중간에 들어가 있다. 한국어 특성상 문장 제일 뒤에는 동사나 형용사가 올 수밖에 없지만 원서의 제 맛을 살리기에는 다소 밋밋해진 문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큰 소리로 읽었으면 '나쁘게'를 세게 발음해 원서의 느낌을 낼 수 있을 텐데 지금 나는 글을 손으로 읽고 있어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번역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책을 이해하고 작가의 의도를 잘 알면서도 한 언어가 다른 언어를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작업이 아닐까. 책 표지에 '조지 오웰' 옆에 적힌 옮긴이 '도정일'이란 이름이 새롭게 보였다.

<동물농장>은 1945년 8월 17일 출판되자마자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다. 그 후로도 사람들은 꾸준히 이 책을 읽는다. 이를 번역하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번역가 도정일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공부를 했을까. <동물농장>을 4번째 읽고 있지만 번역가가 궁금해진 것은 처음이다. 감히 조금 추측해보자면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감정 섞인 표현 하나 없이 객관적인 묘사를 통해서만 동물들을 표현한 이유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한참이나 남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작가, 번역가와 함께 읽으려 한다.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나의 필사가 한층 깊어질 것이다. 필사는 늘 똑같이 손으로 책을 읽는 작업이지만 책장마다 다른 의미를 보여준다.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한계보다는 더 많은 관점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내 필사에 함께 하는 이가 많아 한동안 든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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