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말하는 '정상'을 포기하고, 우리는 이 좁은 집을 우리만의 안전한 '은신처'로 재정의하기로 했다. 아내가 밖을 무서워한다면 억지로 끌어내지 않기로 했다. "남들처럼 살아야지"라는 말이 아내에게는 칼날 같은 폭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 우리가 정한 첫 번째 새로운 규칙이었다.
"그래, 당신이 무섭다면 여기 있어.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야."
나는 퇴근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간식과 아이의 작은 장난감을 사 들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온다. 현관문을 걸어 잠그는 순간, 우리 세 사람은 세상과 단절된 우리만의 궤도에 진입한다. 하지만 그 은신처 안에서도 아내의 우주는 수시로 기이한 기후 변화를 겪었다.
어느 푹푹 찌는 한여름 퇴근길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거실 온도계는 30도를 훌쩍 넘겼는데, 바닥은 발바닥이 뜨거울 정도로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아내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거실 한복판에 두툼한 겨울 이불을 정성껏 깔고 있었다.
"여보, 왜 이래? 이 날씨에 보일러는 왜 켰어? 다들 땀 흘리는 거 안 보여?"
내 물음에 아내는 아주 조심스럽게 입가에 손을 대며 속삭였다.
"쉿, 조용히 해. 옆에 친구가 춥대. 오들오들 떨면서 겨우 잠들었단 말이야. 따뜻하게 해줘야 해. 안 그러면 이 친구 죽어."
반대로 영하의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밤에는, 거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반소매 차림으로 사르르 떨면서도 에어컨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 친구가 지금 너무 덥대. 머리에서 불이 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어." 아내에게는 그 보이지 않는 친구의 고통이 자신의 육체적 추위보다 훨씬 더 절박한 현실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도대체 있지도 않은 친구가 누구냐"며 화를 내고 보일러를 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아내의 세계에 침입하는 대신, 그 세계 옆에 나란히 앉기로 했다. 아내가 "친구가 배고프대"라고 하면, 나는 반박하는 대신 식탁 마주 보는 자리에 빈 그릇과 수저를 하나 더 놓아준다. 텅 빈 의자를 향해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아내를 보며, 나는 그 빈자리에 대고 "그래, 많이 먹어"라고 인사를 건넨다.
'정상'이라는 잣대를 버리고 나니, 오히려 아내를 향한 원망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아내의 망상은 고쳐야 할 오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견뎌내야 할 날씨 같은 것이었다. 다만 아이에게는 여전히 이중생활이 이어졌다. 아빠와 단둘이 밖으로 나갈 때는 문밖의 세상이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지 확인시켜 주어야 했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는 이 기이한 풍경들이 '엄마의 아픔' 때문임을 이해시켜야 했다.
우리는 한 집에서 공존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스스로 만든 '환상의 성'에, 아이는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발견의 세상'에, 그리고 나는 그 두 세계를 잇는 위태로운 다리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아내의 망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의 현실을 지켜내야 하는, 이 은신처의 고독한 규칙 제정자가 되어 오늘을 견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