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지 알 수 없는 피안의 세상으로......
제주도 동부에서의 공식적인 첫날이 시작되었다.
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하는 팀이 우리 형제밖에 없었던 이유로
암묵적인 합의를 통해 1층을 전부 활용할 수 있었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집중하느라 결과적으론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으로나마 여유를 넘치게 채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던 닭내장탕을 파는 식당이 숙소 인근에 있어서
마수걸이로 먹었는데 얼큰함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고
그동안 먹었던 것들이 조금은 기름진 음식이라 개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첫 일정으로 가는 곳의 오픈 시간이 늦은 편이라 며칠 동안 잊고 있던 늦장을 부렸다.
그래봤자 한 시간이었고 그 한 시간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활용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렇게 이동하는 중에 잠시 차를 세워 여유를 되찾아보는 시도도 해볼 수 있었다.
제주도를 오기 전 위시 리스트에 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빛의 벙커였다.
다행히 여긴 코로나 이슈로 인한 휴관을 피해서 볼 수 있었는데
사람이 없는 이른 시간이라 원 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집 근처 나인블록 김포에서도 비슷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봤었지만
여기에 비교하면 그곳은 진짜 코딱지만 한 크기였다.
그리고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보려던 계획은 미디어와 함께 흐르는 음악이 좋아서
제공된 텍스트를 읽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추천한 나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
심취해 에너자이저처럼 유영하는 동생 때문에 기가 잔뜩 빨렸다.
빛의 벙커 옆에 카페 겸 커피박물관이 있길래 여유 한 토막을 곁들이러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물론 전시된 아기자기한 찻잔들이라던지 각양각색의 커피포트들도 눈이 갔지만
목이 말라오는 상황에서 음료를 마시는 행위가 더 급하게 느껴졌다.
재빠르게 관람을 마치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한라봉 아이스 블렌디드와 아메리카노를 들고 햇살을 느끼며 한 잔 했다.
눈코뜰 새 없이 빡빡하게 돌아다녔던 제주도 서부와 다르게
제주도 동부 쪽은 자연을 피부로 느끼자는 의도로 온 곳이라
거의 즉흥 여행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홀짝이는 와중에도 계속 일정을 뒤바꾸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플레이기아와의 인터뷰 이후 여행하는 동안 자동차도 틈틈이 찍어둬야겠다는 생각이 생겼다.
그래서 이동하는 중에 한 두 컷씩 사진을 남겼는데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이걸로 주변 풍경도 톺아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찾은 이곳은 동생이 여행을 즐기는 친구에게 추천받은 집이라는데
원래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맛집임에도
평일 낮+비성수기 시즌+역병 시즌으로 인해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시킨 돔베라면과 돔베덮밥은 서울 생각이 절실하게 했다.
너무 멀리 떠나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지만
한편으론 이런 잡스러운 생각도 맛이 있으니 나는 거겠지 하는
트렌타 T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점심을 먹은 곳 맞은편 풍경이 좋았는지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또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보니 음..... 그냥 심심풀이였던 걸로!!!
여기도 동생이 지인 추천을 받아서 오게 된 곳인데
아보카도와 커피라는 이상하고 아리송한 조합이 궁금해 주문해 봤다.
아보카도 커피와 함께 시킨 천혜향 요구르트.....
근데 각자 시킨 것을 등한시하고 상대방 것을 자꾸 축내는 웃픈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바꿔먹으며 평화적인 결말로 매듭지었다.
확실히 칙칙한 수도권을 떠나 제주도로 오니 차도 사람도 빛이 만발하는 것 같다.
이 녀석과 함께 한 지 12년이 되어가는데 이토록 화려한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아마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날씨 덕분에
잊고 있었던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 아닐까......
도시 속 높은 건물들로 즐비한 곳들에 있다가 제주도에 오니
숲 속에서 무념무상으로 있어보고 싶어 비자림으로 향했다.
(커플이 하필 이 타이밍에...... ㅠㅅ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큰맘 먹고 휴양림을 가야 하기에
적당한 햇살과 피톤치드 그리고 화산송이의 소리가 소중했고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담아가고자 했는데
찐하게 즐긴 산림욕 한 번에 기분으로나마 가뿐해진 듯했다.
숙소 뒤편에 있는 성산 일출봉에서 트래킹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 풍경을 위해 일부러 근처에 숙소를 얻은 것도 있으니
그 이점을 활용해 보고자 찾았는데 걷는 내내 눈에 담는데 열중했던 나머지
걷는 과정에서의 기록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먼 산 보는 사진이 있으니 그걸로 퉁쳐야겠다.....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