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전국일주 부산 편 Part.2
점심 약속이 끝나고 간 곳은 송도해수욕장이었다.
부산에 왔으니 바다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디가 좋을까 하고 찾은 게
바로 송도해상케이블카였다.
물론 부산을 오면서 하얀 악마처럼 짙게 깔렸던 안개 덕분에 날이 매우 좋았고
호기롭게 바닥까지 강화유리로 된 크리스털 케빈으로 티켓을 예약해 두었는데
한 가지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의 고소공포증!!!
하......
사진도 찍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볼 건 봐야겠는데
겁이 난다는 이유로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근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엔지니어가 엔지니어링을 신뢰하지 못하면 되겠니?'
맞다. 기계쟁이 설계쟁이가 이런 걸로 의심을 품으면 그건 내 생업에 대한 반론과도 같았다.
이러면 죽도 밥도 안 되는 데다 장시간 운전한 게 더 위험한 건데
별 거 아닌 걸로 재고 따지는 게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겁은 뒤로 젖혀두고 즐기기로 했다.
아! 이건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했던 건데
혼자 케이블카를 타러 갔더니 나 말고도 여기까지 혼자 온 외국인 관광객과 케이블카를 태웠고
케이블카 타기 전에 둘이 사진을 찍으라고 하면서 온갖 하트를 남발시키는 바람에
생전 처음 보는 분과 하트를 만들어야 했다.
케이블카가 출발하고서 한 5분 정도 정적이 흘렀을까.......
외국인 관광객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때 파파고가 있었으면 수월하게 이야기를 나눴겠지만
그런 것 없이 하트 남발을 웃음으로 합리화를 한 뒤에 각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전국일주를 막 시작했고 서울 명동에서 부산까지 11시간 동안 운전해서 왔으며
오는 길에 안개가 많았던 탓에 조마조마하면서 왔다고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이야기했더니 스탠딩 코미디를 본 것처럼 빵 터진 얼굴을 마주했다.
(네..... 상대방이 남자분이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거라는 거 다들 생각하시겠죠????)
회차 지점인 거북섬에 내려 각자 갈 길을 거북섬을 찬찬히 구경하는데
햇빛이 너무 강렬했는지 실시간으로 피부가 검게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골고루 탔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왼쪽 얼굴만 열심히 타들어가는 바람에
그 이후의 일정에서 씻어도 티가 안 났다.
오죽했으면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첫마디가 "너 안 씻고 다니니?" 였으니.......
크리스털 캐빈에서의 왁자지껄과 거북섬에서의 풍경을 뒤로하고
오전에 잡은 영화를 보러 영화의 전당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라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배를 보며 잠시 고민이 들었다.
'다른 일정 모두 없애고 제주도로 갈까???'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완도에서 제주도를 가는 것보다 부산에서 제주도를 가는 게
시간과 금액이 더 드는 항로였다는 것......
이때 부산 출발 제주 도착 배를 보고 다음으로 기약한 게
2년 뒤 2020년 3월 <숨비소리 제주로드>를 떠나게 된 시발점이 되었고
그 덕분에 전국일주라는 목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마 이때 제주도를 갔다면 부산과 제주도만 보고 돌아갔을 테니까......
아무튼 송도해수욕장에서 영화의 전당으로 돌아가는 그 사이에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는데
낮과는 전혀 다른 영화의 전당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걸 보면서 부산에 살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산다면 더 윤택한 삶이지 않을까 하고 견물생심이 쑥! 하고 자라났는데
이렇게까지 집에서 멀리 떠나와서 그런 건가 하고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내가 여행을 온 거지 노매드랜드를 찍으러 온 게 아니니까.......
흠..... 6년 반이 지난 이때까지 강렬했던 영화였는데
정작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 게 아이러니했다.
아무튼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를 본다는 예상 못했던 경험 덕분에 추억이 하나 생기긴 했다.
영화의 전당에서 어디를 갈까 하고서 고민을 하던 중에 광안대교 야경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베이 101과 민락수변공원을 가야겠다 결심하고
더 베이 101 근처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이 때 깨달았다.
경치가 좋은 곳은 혼자 가는 게 아니라는 걸.......
그간 경험해보지 않아 몰랐고 생전 마주한 적 없던 어색함이 여기서 터져나왔다.
연휴의 시작점이라 더 그랬을텐데 잠깐만 버티면 되는 걸 못 참고서
찬찬히 구경하려던 계획을 바로 접고 민락수변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이 때가 또 아이러니 한 게 이 때 찍은 사진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니
나름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아..... 좀만 더 있을 걸" 하고 후회해봤자 이미 늦은 걸 어찌할 바가 없었기에
이 여행 이후에 혼자 여행 가는 걸 극도로 배제하고 동생을 태우고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조용할 틈 없이 티격태격하고 다니며 시끌시끌해졌지만
여행의 본질은 전국일주 이후에 찾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민락수변공원 주변이 무료 주차로 변경되는 시점에 도착한 여기서 본 광안대교는
다음날 일정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임을 잊게 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이 당시에 이 풍경을 안주 삼아 술 주자 쓰시는 주님을 찾는 분들이 많아
멀찌감치 구경하는 게 다였지만 그래도 부산의 낮보다 부산의 밤에 매료되는 시간이었다.
아! 몇년을 두고두고 보는 이 사진도 여기 민락수변공원에서의 낭만을 담았더랬지!!!
물론 이걸 찍고 잠이 몰려온 나는 차박을 선택하게 되었다.
더워서 혼났지만 밀면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밀면을 빌미로 아침을 보기로 했고
다음 목적지인 거제도를 가기 전 낭만을 충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