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전국일주 거제, 여수 편
여수엑스포해양공원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인 것처럼 요란했던 밤이 지나고 더위가 가신 자리에
빈집털이하듯이 들어선 바람이 부는 차가움에 잠이 깼다.
고요함과 한적함이 있는 여유로움이랄까......
부산을 내려가는 길부터 전날 야경을 보느라 숙소를 잡지 않고
차박을 이틀 연달아했기에 솔직히 몸은 뻐근했다.
아침 바다만 보고 얼른 다시 출발할 채비를 하기로 했다.
근데 이 구도가 참 좋았다.
그래서 차에 남아있던 캔커피 하나를 꺼내 10분 정도 더 눌러앉아있다가
이대로는 여기 텐트 치겠다는 마음이 들어 진짜 일어나
근처 찜질방에서 재정비를 마치고 거가대교를 따라 거제도로 향했다.
확실히 추석 연휴에 들어서자 사람이 많아진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점점 쌓여가고 있었고
거제도를 거쳐 여수까지 하루에 주파해야 하는 나로서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진짜 필요한 것만 처리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남은 길을 가기 시작했다.
거제도에서 들린 곳은 바람의 언덕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을 보았던 부산과 다르게
이곳에선 조금은 흐려진 날씨 덕분에 거니는데 조금은 나은 사정이었다.
아침에 휘감던 고요함은 사라졌지만 환경의 변화를 실감하기엔 딱이었기에
혼자라는 이점을 살리기에도 좋았다.
이런 풍경을 가족이랑 공유하고 싶어 영상통화를 걸었는데 집에서 온 첫마디는
"얘가 집 밖을 나가더니 거지꼴이 따로 없네! 씻고 다니는 거 맞지???"
아...... 이런.......
부산에서 왼쪽 얼굴만 탔던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그래도 생존 신고와 함께 무사함을 공유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바람을 만끽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음을 깨달았고
여기서 여수로 가야 한다는 걸 잠시 잊어버릴 뻔했다.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면서 시간 감각도 흐트러진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느슨해진다는 것으로 변하며 일정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라리 여수에서 퍼지는 게 더 낫겠다 판단하고 게으름을 털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곰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테디베어뮤지엄을 가보는 게 이번 전국일주 목적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 당시에 제주-군산-여수-설악-경주 중에 테디베어뮤지엄 여수를 선택했는데
이곳을 관람하면서 제주도는 다음으로 미루고 남은 군산-경주-설악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여기서 일정을 전면 재개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테디베어의 귀여움에 트렌타 J는 그란데 P가 되며 곰인형 사이에서 털썩 주저앉아
남은 일정에서 테디베어 뮤지엄을 이리저리 낑겨넣고나서야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테디베어뮤지엄 여수가 하와이 테디베어월드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그런지
미국에 대한 이야기가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곰이 곰을 보는 듯한 기분도 자연스레 들기 시작했다.
결국 부산과 거제에서 절약한 돈으로 테디베어를 결제하고 있는 내 모습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고 그때 데려온 녀석들과 테디베어 뮤지엄 투어를 짠 것 같은 구도가 되었다.
마침 테디베어뮤지엄 여수가 여수엑스포해양공원 내에 자리 잡아서
자연스럽게 이곳도 구경하게 되었다.
엑스포가 열렸을 당시에 솔직히 관심도 그렇게 가지 않았던 데다
사람 바글바글한 거 딱 질색이기도 한 내 성향으로 인해
오히려 열기가 식어 싸늘하기까지 한 이 모습이 되려 더 마음에 들었다.
한없이 마냥 걷고 또 걷다 보니 높다란 무언가를 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스카이 타워 전망대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마음에 들어가 봤다.
이런 건 나에게 그렇게 신기한 게 아니니 패스!!!
전망대니까 올라가 봐야지요!!!
그래!!!
전망대에 오자마자 파노라마 샷으로 풍경부터 담았다.
명동에서 부산-거제-여수까지 900km를 달려온 것에 대한 본전이랄까?
여기까지 와서 단돈 2,000원에 귀한 구경 한다 생각하고
전망대를 빙빙 돌며 여수바다를 만끽하는데 여기도 여객선이......
제주도에 대한 충동이 부산에 이어 또 도졌다.
여기서 차 싣고 가면 부산보다는 덜 고생하겠지? 하는 생각이 문제였다.
물론 부산에서 한번 털어낸 덕분에 두 번째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제주도를 고려하고 준비한 게 아니기에 차에 대한 신뢰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도
충동을 그저 흘러가는 생각에서 끝내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제공했고
그냥 여수 밤바다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커피를 너무 마셨는지 쓴 거 말고 단 게 당겼다.
마침 녹차 아이스크림이라는 요긴한 선택지가 있었고
한 숟가락씩 뜨며 해가 지길 기다렸다.
여수 밤바다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괜히 노래가 나온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해돋이를 보러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차를 찾으러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공간이 이토록 참신하고 자극적일 줄이야......
다음 장소 근처에 있는 숙소에 들리기 전에 몸이 너무 근질거렸다.
자동차 청소하는 김에 사람도 클리닝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양해를 구하고 화물차 라운지 찬스를 선택했다.
아! 개운해!!!
차에서 잠시 숨을 돌리면서 멀쩡한 차에 비해 잔뜩 뻐근해진 발목에 스스로가 민망해졌다.
하긴 자동차 퍼질까봐 출발하기 전에 리프트를 몇번을 태웠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