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늙기 전에, 너무 크기 전에
딸내미가 태어난 해에 친정엄마가 터미널 지하상가에서 화분을 하나 사들고 오셨습니다. 두꺼운 줄기가 힘차게 버티고 서있고, 줄기에서 뻗은 가느다란 가지 끝에는 쫙 펴진 손바닥처럼 싱싱한 다섯 장의 초록 잎이 붙어있었습니다. ‘파키라’라고 했습니다.
딸내미 쳐다보기에도 힘에 부치던 때라, 흘끗 쳐다보고 이름이 뭔지, 햇빛과 물은 얼마나 필요한지 물어보고는 베란다 한 구석에 팽개쳐두었습니다.
서너 해가 지났습니다. 이파리가 노래져 떨어지기도 하고, 새순이 다시 돋기도 하더니, 어느 늦가을쯤 더 이상 버티기는 무리였던지, 달고 있던 이파리를 모두 맥없이 떨어뜨렸습니다. 가지 끝은 다 갈라지고 몸통 줄기만 화분에 갈색 곤봉처럼 꽂혀있었습니다.
들여다보지도 관심도 없었지만, 혼자 잘 살아가길 바랐는데…. 잎 하나 없이 볼썽사납게 화분에 덜렁 몸통만 서있으니 죽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화분은 일반 쓰레기인가 재활용 쓰레기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버리는 것도 귀찮아 미뤄두었습니다.
파키라는 영하 10도, 20도 내려가는 추운 겨울 서너 달 동안, 단 한 방울의 물도 공급받지 못하고 그 추운 베란다에 서 있었습니다.
다음 해 봄기운이 돌 무렵 베란다 청소를 하다, 구석에 놓인 파키라 화분을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말도 더듬으며 남편을 불렀습니다.
“나~나~남편~~ 얼른 와봐. 빨리.”
놀라 뛰어온 남편과 뭔 재미있는 일이 있나 보다 호기심에 덩달아 함께 달려온 딸내미와 옹기종기 세 명이 엉덩이를 붙이고 모여 앉아 파키라 화분을 들여다봤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파키라 줄기에서 가느다란 초록 가지가 나오고, 그 끝에는 작은 인형 손바닥 만한 다섯 장의 이파리가 연하게 오물거리며 매달려 있었습니다.
“기적이다. 이건 기적이야.”
그 추운 겨울을 베란다에서 물 한 번 받아먹지 못하고 견디고 살아낸 생명력이 놀라웠습니다. 거실에 들여다 놓고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물도 흠뻑 주고, 그 작은 인형 손바닥이 사람 손바닥만큼 커지고 푸르러지는 것을 지켜보며 미안했습니다.
살아있었는데, 아직 살아있었는데, 죽었다고 버리려 했다니. 자기도 살려고 남은 수분을 아껴 쓰고, 햇빛을 모으고 모아, 버티며 생명을 이어 왔을 거라 생각하니 안쓰러웠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 ‘엄마 고픈’ 딸내미는 추운 겨울 베란다에 버려진 파키라 화분이었을 것입니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에 목이 말라, 줄기가 꺾이고 잎은 시들고, 목은 타들어가는 안쓰러운 나무.
그런 딸내미에게 엄마와 함께 지낸 36일 여행은 겨우 죽지 않을 만큼 받아먹은 물 한 모금이었을 것입니다. 물 한번 주었으니, 그 물로 폭염도 견디고 추위도 견디고, 꽃도 펴내고 탱탱한 열매도 듬뿍 맺어주길 기대하는 어리석은 엄마는 되지 않으려 합니다.
딸내미와 마음거리 채우기’라는 여행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는 모릅니다. 유럽여행이 답은 아니더라도, 함께 손잡고 다녀와서 좋았습니다. 제가 너무 늙기 전에, 딸내미가 너무 크기 전에. 딸내미의 종알종알 수다가 늘고, 평소에 안 하던 애교를 피우는 것을 보면, 서서히 우리의 마음거리가 채워지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계속 살아서 뭐할 거야? 자식을 잃는 것보다 힘든 게 어디 있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의 선택이야. 계속 가기로 했으면 그 결심을 따라야지. 편하게 앉아서 드라이브 즐겨.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홀로 우주에 산소도 없이 지구 귀환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쩌면 자신에게 스스로 한 말이겠죠. 인생 계속 살기로 했으면,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라는.
무중력 상태에서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도 36일 여행으로 한 동안 숨 쉴 산소를 확보한 것처럼 힘이 납니다.
그 힘으로 일상을 단단히 두 발 딱 버티고 꾸려나가려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딸내미 방 커튼을 젖히며, 큰소리로 딸내미에게 엄마의 사랑을 전합니다.
“딸냄~ 안 일어나냐? 빨리 일어나. 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