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난 철학관에 와 있었다. 딸내미 낳은 지 5개월 만에 아기 둘러업고, 의대 편입 시험 보겠다고 친정에 붙어있을 때다. 37살, 문과생이었다. 낯선 화학 공식을 외우며 딸내미 젖을 물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합격’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내기엔 최악의 조합이었다. 의지와 열정, 노력에 대한 믿음과 허영과 꿈이 뒤엉켜 내가 스스로 밀어붙여 만든 상황이지만, 나도 불안했다.
그때 한참 점을 보러 다녔다. 모두 말끝을 흘리며, 책을 뒤적이고 쌀을 흩뜨렸다 모아 담았다. 그 이유를 몇 개월 후에 알았다. 난 뽑은 칼로 썩은 호박도 못 잘라보고, 딸내미 장난감을 차에 싣고 서울로 복귀했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미래를 몰라서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미래를 몰라서. 힘든 일이 닥치면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불안은 미래를 모르니까 생긴다는 말은 얼추 맞다. 한밤중에 목말라 부엌에 물 마시러 갈 때, 우리는 불안하지 않다. 불을 켜지 않아도 다 안다. 세 발자국 걸으면 문이 있고, 오른쪽으로 아홉 발자국, 식탁을 끼고 왼쪽으로 네 발자국 걸으면 물주전자가 있다는 걸. 다 알고 수백 번 경험한 일이니 불안할 게 없다.
미래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언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지, 절벽 아래로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다. 철학관에 들어가 내 인생 어떻게 될까요? 공손히 손 모으고, 좋은 얘기 나오길 마음 졸일 때는나의 상황이 불안하고, 다가올 미래를 헤쳐 나갈 자신이 없을 때다. 실패가 아니고 그 또한 '나의 길'이라고 다독거리고 일어날 용기가 없어서다.
오늘 점심 뭐 먹을까? 하는 작은 선택에도 자신이 없는데, 하물며 자기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자기가 ‘직접’했다가, 잘못되면 어쩌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변화와 결정의 길목에 서면 더 불안하다. 해도 안 되고, 이제 포기할까 말까도 스스로 판단이 안 설만큼 연속으로 어퍼컷을 두들겨 맞고 있을 때, 우리는 진짜 불안하다.
결혼 전 몰티즈 강아지를 혼자 키웠다.
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새끼를 4마리나 낳았는데, 집에 데리고 오자마자 새끼 한 마리가 죽으려 한다. 한 손에 새끼를 잡고 인공호흡까지 시켰는데 죽었다. 울면서 아파트 정원의 흙을 꽃삽으로 파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막 지날 때였다.
“뭐해요?”
지나가던 경비아저씨가 물었다.
“흑흑, 우리 강아지 새끼가 죽어서 묻어주려고 땅 파요.”
“겨울이라 꽁꽁 얼어서 안 파질 텐데….”
“흑흑 그럼, 어떻게 해요? 죽었는데.”
죽은 강아지 새끼보다 그러고 있는 내가 더 안쓰러웠던지 큰 삽을 가져다주셨다. 난 그 삽으로 꽁꽁 언 땅을 겨우 조금 긁어 파서, 몇 시간 살아보지도 못한 새끼를 묻어주고 통곡했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니, 강아지 새끼에게 인공호흡을 한 게 아니라, 나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친다. 제대로 했더라도 살 확률은 희박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심폐 소생술이든 인공호흡이든 제대로 배워두지 않으면, 강아지 새끼가 아니라 사람도 잡겠다 싶어 대한적십자사 쫓아다니며 수업 듣고 수료증도 받았다.
일주일에 세 번, 1분만 해도 나가떨어지는 심폐 소생술을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서 더미 인형에게 헐떡이다, 집에서 와서는 타로카드 영문 책자를 뒤적이며 독학을 했다.
현실에서 내가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놓일까 두려워 심폐소생술을 배우고, 철학관에 가서 다소곳이 앉아 반말 찍찍하는 이상한 인간들의 한 마디에 덜덜 떨고 싶지 않아, 내 운명을 내가 맞춰보자 타로카드를 배웠다. 둘 다 불안해서였다.
독학으로 공부한 타로카드
정말 미래를 알면 덜 불안할까? 우린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 태어났으니 죽을 테고, 흥하면 망할 테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생 새옹지마라는 것. 우린 다 알고 있다.
뭘 더 알고 싶어 철학관, 점집을 전전하는 걸까? 나에게 일어날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을 미리 듣고 싶어서다. 그래야 지금 힘들어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금방 승진한대, 금방 좋은 사람 만난대, 금방 합격한대….
아무리 신비한 기운을 살짝 들춰보러 간다지만, 밝은 분위기의 타로카페를 찾든, 신 내린 아기동자를 찾든 그들은 우리의 불안을 먹고살고, 우리는 쇠사슬에 묶인 아기 코끼리가 된다.
검증도 안된 누군가의 한마디에 휘둘리며 내 인생 거기에 꾸겨 맞춰 사는 것보다, 복채 낼 돈으로 바싹하고 따뜻한 붕어빵 2,000원어치나 사 먹고 좋아하자.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를 꼬리를 먼저 깨물까, 머리를 먼저 깨물까 잠깐 고민하며 베어 물고 행복하자. 제대로 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주는 단골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 음미하며, 신맛 쓴맛 단맛 다 느껴보며 행복하자.
우리는 ‘미래’라는 애는 본 적도 없고, ‘지금’이라는 애는 매일 매 순간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