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쏟아내면 주워 담기 어렵단 걸 알면서도

2024. 09. 19 율이 생후 108일의 기록

by 곰곰

오늘따라 율이가 낮잠에 들기 전 잠투정이 심했고 입면 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율아, 자는 느낌이 낯설어? 엄마가 검색해 봤는데 아가들은 잠자는 거 무서워한다며, 엄마가 빨리 잠들 수 있도록 도와줄게." 하며 율이를 안고서 리듬도 타고 토닥여도 보며 여러 방법을 썼다.


요즘에도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이 굽어있고 통증이 있어서 정형외과에서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다. 의사 선생님은 손을 가능하면 쓰지 말라는데, 율이를 안고 싶은데 어쩌겠냐...!


사실 어제 정형외과에 갔을 때 물리치료 후 이대로 쭉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노곤노곤 했고 그 느낌 그대로 쉬고 싶었다. 자고 싶다는 생각도 하며 누워 있었는데 내가 치료가 끝나고도 나오지 않자 물리치료사님이 오셨다. 쫓아내는 건 아니었지만 내 체감으론 이제 그만 하라며 베드에서 끌어내린 느낌이었다.

어제 남편이 율이를 보기로 했고 물리치료 후 오래간만에 주어진 자유 시간 동안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은 어딜 지 고민했다. 카페에 가서 달달한 커피도 마셨지만 내가 원하는 휴식의 형태가 아니었다. 마사지를 받을까 싶었는데 마사지에도 에너지가 쓰이니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목욕탕에 갈까 했는데 코로나가 재유행하는 시기라 왠지 찝찝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누워서 쉬는 것이었다. 몸이 쉬고 싶다는 소리를 내는데 이 말을 듣지 않으니 나는 또 예민해지고 있었다.

어제저녁엔 예민한 상태로 남편의 말을 날 선 말로 받아쳤다. 날 선 말은 한 번 나오더니 통제되지 않은 채 덩어리가 되어 쏟아지고 또 쏟아졌다. 따갑고 뜨거운 말들을 뱉고 난 내 입에선 김이 나올 기세였다.


후회한들, 쏟아낸 말들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


밤 10시쯤이었던가. 갑자기 남편이 좋아하는 무알콜 맥주를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실 겸. 그렇게 집에서 나와 근처 마트에서 2캔을 사서는 1캔을 남편 책상 위에 올려둔 후 "아까는 미안했어. 마셔" 하며 방에서 나왔다.


오늘 아침,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쐐했다. 율이가 이 쐐한 공기를 느낄까 봐 또 불편했다. 남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수습이 안 되네, 과보 받는 중’이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퇴근한 남편과 여러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나누며 완전히 마음이 풀렸다. 정말이지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행여나 내가 과보 받느라 불편했던 마음들이 율이에게 드러날까, 율이 표정도 살피며 나름 열심히 놀아준 하루. 어제, 오늘 느낀 바가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진짜 대단한 거구나! 남편도 오늘 저녁 율이를 재우며 행여 율이가 분위기를 알아챘을까, 괜히 미안해서 더 안아줬다고 했다.


남편에게 정형외과에 갔을 때 정말 쉬고 싶었고 누워있고 싶어서 나오기 싫었다고 하니 차라리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오라고 했다. 그러게... 수액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래나 저래나 나의 재활에만 신경 쓰라며 마음 써주는 남편 고마워. 결론적으로 오늘 하루는 해피엔딩이다. 날 선 말의 과보가 이렇게나 오래간다.

내일은 율이가 신생아 청력 정밀 재검사를 위해 신촌 세브란스에 가는 날인데 6시간 금식을 해야 한다. 율이가 6시간이나 못 먹는다니 금식도 걱정이고 결과도 걱정이다. 내일이 무사히 가길!


20240919.jpg 율이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엄마도 더 노력할게!


keyword
이전 04화어렴풋한 기억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