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4 율이 생후 256일의 기록
오늘 이유식을 기다렸던 이유가 있다면 크게 썬 당근을 어떤 반응을 보이며 먹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출산해서 아가를 키우고 있는 아는 동생이 종종 토핑이유식 사진을 보내줬었다. '이렇게 큰 걸 먹는다고?' 0.7cm-1cm 정도로 크게 썰어놓은 재료들을 먹는다는 게 그저 신기했었다. '율이도 덩어리 음식을 먹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도 '진짜 이렇게 큰 걸 먹을 수 있을까?' 궁금했었다.
딸기로 핑거푸드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당근을 조각내어 준 날이었다. 실리콘 식판에 썰어놓은 당근 조각들을 올려두고 그 옆에는 숟가락에 쌀오트밀죽을 떠서 두었다.
"율아, 먹고 싶은 거 먹어" 하며 율이를 보면서 나도 간식을 챙겨 먹었다. 율이는 음식이 올라간 부분을 잡고서 입에 넣으려고 했다. 숟가락은 가로방향이 아니라 세로방향으로 들어갔다.
"어, 어 율아! 숟가락을 눕혀!" 하며 율이가 정말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먹는 장면이 신기해서 꼭 먹길 바랐다. 축구공이 골대로 들어가길 바라는 것처럼 마치,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세로로 들어간 숟가락 사이로 음식이 떨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율이가 숟가락으로 먹으려고 시도했다는 게 기특했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율아, 율이 너무 기특해.. 숟가락으로 먹어보려고 한 거야?" 다른 숟가락으로 쌀오트밀죽을 떠서 율이를 먹여주는 동안 율이는 손으로 당근을 만지작거렸다. 당근 조각을 야무지게 쥐고선 떨어질 새라 양손으로 당근 조각을 먹었다.
"율아! 우리 율이, 손으로 당근 집어먹었네. 우리 율이 언제 이렇게 큰 거야."
율이가 당근을 입에서 오물거리는 동안 숟가락으로 쌀오트밀죽을 떠서 실리콘 식판 위에 올려두었다. 율이는 음식이 올려진 쪽으로 숟가락을 잡더니 입으로 가져갔고 촙촙 빨아먹듯이 먹은 후, 마치 다 먹었다는 신호처럼 숟가락을 툭 던졌다.
"율아! 율이 숟가락으로 먹은 거야?"
감격에 가득한 채로 솔톤으로 말하고 있는 나. 나도 모르게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렇게 이유식 시간은 율이가 당근도 손으로 집어먹고, 쌀오트밀죽이 올라간 숟가락을 직접 들어 먹는 시간으로 흘러갔다. 중간중간 나의 물개박수도 함께 했던 시간. 가만 보니 숟가락을 쥐던 율이의 손은 왼손이었다. '우리 율이가 왼손잡이인가?'
설거지를 하면서 율이가 숟가락으로 스스로 먹으려는 모습이 다시 생각났다. 또 떠올려 봐도 그 장면은 참 놀라웠다. 이유식을 시작한 지 약 두 달 반, 이렇게나 성장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구나. 이유식 시간이 그런 거구나. 한 달은 이유식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유식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다. 복병이다' 싶었는데 두 달 반이 되니 '성장하는 모습이 그대로, 아주 여실히 드러나는 매력적인 시간'으로 느껴지다니!
물론, 치우는 일은 더 더 많아졌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으면 다 먹는 게 아니라 빨아먹는 것이기 때문에 반 정도가 남아있다. 율이는 다 먹었다는 신호로 숟가락을 내던지니 남아있던 음식이 바닥으로 튕겨져 나갔다. 떨어지는 숟가락을 그때마다 줍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런데 율이가 이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아주 신기해서 웃음이 나고 신이 났다.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더라? 아니 8개월인데 숟가락을 입에 넣어서 먹다니.. 정말이지 그 장면을 누군가 촬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율이 진짜 영재 아닌가? 영재면 어떡하지? 나의 상상은 율이가 영재인 것까지 가서는 영재면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율이가 외로워지면 어떡하지? 까지 갔다...
자기 자식들은 다 천재로 보인다는데 맞아요. 나요, 나. 그런 사람 여기 있습니다! 내일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유식 시간에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줄는지! 이유식 시간이 기다리는 시간이 되다니. 매력적이다 이유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