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8 율이 생후 260일의 기록
그러고 보니 율이를 어제저녁 8시경에 보고 오늘 낮 4시에서나 봤다. 내가 응급실에 있는 동안 율이는 친정엄마를 계속 따라다녔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율이를 부르니 율이는 나를 보고 씩 웃고는 친정엄마 품으로 갔다.
"율아, 이제 할머니한테 가는 거야?"
율이가 정말 보고 싶었는데 내심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친정엄마와 친정아빠가 집에 가신 후 율이는 거실에서 놀았고 나는 율이 곁에 있었는데 율이는 내 품으로 와주진 않았다. 친정엄마에게 율이가 유산균을 먹었냐고 여쭈니 안 먹었다고 하셔서 챙기러 부엌에 갔다. 거실 쪽을 보니 율이가 이내 따라왔다. 배가 아파서 율이를 안아 주지는 않고 유산균을 물에 탔다.
갑자기 율이가 울기 시작했다. 유산균을 겨우 먹이며 진정되나 싶었는데 "엄마아아아아"하며 서럽게 울었다. 또다시 "엄마아아아아"하며 울었다. 배는 아팠지만 율이를 안고 달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이를 안아서는 "율아, 엄마도 우리 율이가 정말 보고 싶었어, 율이가 많이 놀랬다 그치" 율이 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율이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거의 10분을 넘게 운 것 같다. 율이는 기어이 목이 쉬었다.
남편에게 포대기 하는 것을 도와달라며 율이를 업었다. 율이는 포대기를 하면 꼭 웃었는데 계속 울었다. 율이를 업고 부엌과 거실을 돌아다녔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진정이 되는 듯했다. 율이는 그렇게 포대기 속에서 잠이 들었고 마지막 수유를 준비한 후 수유를 하며 잠을 잤다. 수유 후에도 한참을 율이를 안고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율이도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율아, 엄마도 우리 율이가 정말 보고 싶었어.
오늘 새벽 응급실에서도 배통증이 계속됐었다. 진통제를 2개를 썼는데도 차도가 없었고 3개째 달았을 때 통증의 범위가 좁아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여전히 아팠다. 응급실 담당의는 맹장염일수도 있으니 CT도 찍어보자고 했다. CT결과 맹장 위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오전에 영상의학과 교수가 오시면 그때 설명을 들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통증이 잡히지 않는다니 정말 이게 맹장염인가, 수술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맹장염이면 데굴데굴 구른다고 알고 있었는데, 검색해 보니 배가 아파서 허리를 못 폈지만 데굴데굴 구르진 않았다는 글이 있었다. 나도 허리를 못 폈는데... 진짜 맹장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율이가 아니라 내가 아파서 다행이다 싶었다. 맹장수술, 기꺼이 하자.
오전이 돼서 의료진이 잠깐 오시더니 CT에서 맹장염 소견이 보였다며 복강경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고선 1시간 30분 정도 후 외과 교수님이 오셨다. 아랫배 여기저기를 눌러보시며 질문하시더니 맹장염은 아닌 것 같다며 아랫배에 물이 찬 것 같다고 하셨다.
담당 교수님이 오시더니 골반염이거나 맹장염 초기 일수도 있다고 하셨다. CT에 맹장염 초기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귀가 조치하고 항생제, 진통제를 처방해 드릴 테니 먹어보고 차도가 없거나 악화되면 무조건 다시 오라고 하셨다.
골반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마 전 속옷에 묻었던 피 섞인 분비물이 생각났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골반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응급실에서 집으로 오는 길, 남편에게 집에 잠깐 들러 씻고 나면 바로 산부인과에 가보자고 했다. 산부인과에 가서 상황을 말씀드리고 자궁 초음파를 해보니 자궁에 물이 생겨있었다. 걸을 때마다 진동이 아랫배로 가서 너무 아프다고 하니 그 또한 골반염 증상 중 하나라고 하셨다. 균검사 결과는 내일모레 나온다고 설명도 덧붙이셨다. 맹장염은 초기여도 항생제 치료 후 결국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골반염의 가능성이 큰 상황이 다행이다 싶었다.
목이 쉬어라 "엄마아아아아"하며 우는 율이를 떠올리니 정말 입원이라도 했으면 우리 율이가 너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내가 아픈 게, 내 몸으로 다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 새해를 맞이하며 친구가 추천해 준 역술가에게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내 나이가 38살일 때 친정엄마가 아플 수 있거나 자녀가 아플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사주라는 게 믿으면 믿는 거고 안 믿으면 안 믿는 것이라지만 이 말은 내내 마음속에 걸림으로 남아 있었다. 둘 다 안 아파야 하는데 '또는'이라니! 이걸 어떻게 선택하나요? 내가 아픔으로써 이 마음의 찝찝함이 해소됐다. 내가 아파서 다행이다. 항생제 치료면 낫게 되는 골반염이라 다행이다.
율이가 정확히 몇 번이나 "엄마아아아아"하면서 울었던 모습은 사실 너무 놀라웠다. 율이와 나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졌는지, 율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이토록 오래 떨어져 있었던 적은 없었다. 남편은 응급실에서 7시간을 아기띠를 한 채 서서 율이를 재웠다. 앉으면 바로 깨는 걸 몇 번 느꼈다며 그렇게 밤을 새웠다.
나 역시 이 검사, 저 검사를 불려 다니고 겨우 잠에 들려하면 혈압을 재러 오는 상황에서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하루. 그럼에도 끝끝내 남는 마음은 감사함이었다. 이 삶이 그저 감사하다. 오늘도, 율이의 엄마로 살아갈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