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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서가 Nov 26. 2023

전쟁의 기억을 만나기 위해 떠난 목욕탕 여행

야스다 고이치, 카나이 마키,『전쟁과 목욕탕』 (이유출판, 2003)

 남녀노소 다정하고 편안하게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채화로 그린 일러스트가 정겹다. 그 아래 빨간 궁서체로 또박또박 ‘전쟁과 목욕탕’이라고 쓰인 제목. 예쁘고 이질적인 표지가 궁금증을 일으킨다. 도대체 전쟁과 목욕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책은 논픽션 작가인 야스다 고이치와 수필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인 카나이 마키가 함께 쓰고 그린 책이다. 목욕탕을 통해 일본의 실패한 역사를 돌아보고 일본 사회의 허점과 한계를 마주하자는 의도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은 태국의 정글 노천탕, 오키나와의 대중목욕탕, 한국의 목욕탕, 일본 사무카와와 오쿠노시마 목욕탕을 탐방한다. 두 작가는 전쟁의 기억이 남겨진 장소와 목욕탕을 여행하며 우연한 만남을 시도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각과 기억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쟁의 흔적과 만난다. 목욕탕에서 사람들은 알몸으로 만난다. 속수무책 알몸의 상태는 사람들 사이의 담과 담을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만난 사이에서 저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속 깊은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자 출신인 야스다 고이치의 시선과 수필가인 카나이 마키의 다른 시선이 교차되는 것도 흥미롭다.


 목욕 탐방기 중 가장 묵직하게 다가온 것은 오쿠노시마섬의 독가스 무기 이야기이다. 오쿠노시마섬의 독가스 무기 공장에서 종사했던 사람들은 노동 재해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었다. 전쟁 이후 오쿠노시마섬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귀여운 ‘토끼’ 섬으로 유명해졌지만, 전쟁 시 독가스 실험을 위해 많은 토끼들이 실험실에서 죽어 갔다고 한다. ‘가해와 피해’ 두 얼굴을 가진 섬의 역사를 통해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했다.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세상의 소리에서 멀어져야 했던 사람, 일본과 한국 두 나라를 오가며 살아온 사람, 아직 전쟁의 후유증으로 앓고 있는 사람들. 전쟁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을 흑백논리가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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