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곰 Apr 27. 2023

둘이서 만들어가는 하프 앤 하프 피자

각자의 취향을 담아 한판 위에 만들어내는 피자


강렬한 첫 경험, 피자

나이가 들어가며 세월의 흐름 속에 첫 경험의 추억들은 많이 사라지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결국 결과만이 남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난 짜장면을 좋아하지’.라고 내 음식에 대한 기호를 표현하는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는 저의 마음이지만, ‘짜장면을 언제 처음 먹었고 왜 좋아하기 시작했지?’라고 생각해 보면 정확하게 무엇이라 답을 해야 난해합니다.


반대로 어떤 첫 경험들은 머릿속에 매우 강렬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피자가 그렇습니다. 피자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의 어릴 적에,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고모부를 따라갔던 용산의 미군기지 내 레스토랑에서였습니다. 주로 미군들이 사용하던 식당이라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고모부 찬스’를 받아 겨우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다려진 빳빳한 흰색 식탁보가 정갈하게 놓인 원형 테이블은 우리 온 가족이 다 앉아도 자리가 남을 정도로 넓었습니다.


우리 테이블 말고는 대부분 가족단위 백인 손님들이 있었고 미군들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인을 거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던 터라 우리 가족들은 그런 노랑머리의 흰 피부 (혹은 완벽하게 검은) 사람들을 신기했습니다. 동시에 그 이질적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쥐 죽은 듯이 테이블에 앉아서 피자를 기다렸습니다. 어색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자 드디어 기다리던 피자를 마주했습니다. 미군들이 먹는 피자의 크기는 미국 대륙만큼이나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린아이였던 제가 양팔로 뻗어도 다 안을 수가 없을 것만 같이 커다란 피자. 이미 비주얼 만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먹었던 피자의 맛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손에 다 들 수 없는 한 조각의 피자를 한입 베어 물어보았습니다. 곧 이전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짙은 치즈의 짭짤함과 동시에 꼬릿 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페페로니의 간결하면서도 짙은 고기맛도 너무나도 훌륭하였습니다. 그날 저는 정말 배가 터질 수 있을 정도로 마지막 한 조각까지 끝까지 입으로 피자를 밀어 넣었습니다.


미군 레스토랑은 계산도 미국돈으로만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계산을 담당하셨던 할머니께서는 그날 피자를 먹기 위해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해서 달러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훗날 할머니께서 그 옛날 손주들 피자 한번 제대로 먹여보겠다고 너무 고생하셨다며, 그때 피자가 너무 비쌌다며 그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 그때 치르신 노력과 돈은 전혀 아까워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어도 제가 그날의 기억을 평생 품고 살아갈 것이니까요.


피자,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날 외식으로 즐기던 피자가 어느덧 집에서 편하게 배달시켜 먹는 일상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피자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 어려운 음식입니다. 제대로 된 피자를 만들려면 도우를 직접 발효시켜야 하고 피자를 구울 오븐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와이프를 만난 연애 초반에는 둘이서 요리를 함께 하며 데이트를 했습니다. 아내는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베이킹에도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오븐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랑 연애하기 전에도 피자를 즐겨 만들어 먹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드디어 피자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피자를 먹었던 그날처럼, 처음 같이 피자를 만들어 먹었던 그날의 첫 경험도 기분 좋은 추억이 한가득입니다. 설레는 기분으로 진행되었던 그날의 요리 과정은 경험이 풍부한 와이프가 리딩하였습니다.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의 일일 피자 보좌관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피자를 만들 때에는 언제나 설레는 기분 가득입니다.


오븐에 구워지는 피자를 보고 있으면 맛있는 피자가 되기를 바라며 새 생명을 대하는 듯 경건한 마음까지 드는 것 같았습니다.



각자를 닮은 피자를 만들다.

맛있는 피자를 만드는 건 도우가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피자 위에 치즈가 없는 부위는 있어도 도우가 없는 부분은 없습니다. 피자 도우가 잘 발효되어야 쫄깃하면서도 바삭한 피자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우는 집의 설계와 같습니다. 아무리 튼튼한 집을 짓는다고 해도 설계가 엉망이면 좋은 공간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구조로 도면을 만들었다고 해도 들어가는 재료가 부실하다면 안전한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 도우 위에 올리는 소스와 토핑은 집안을 꾸미는 인테리어와 같습니다. 각자의 취향과 성향에 맞춰 만들어 꾸며가는 집안 내부입니다.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사용자들의 기호와 취향,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도움을 주는 구성으로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대학 때 인테리어를 전공한 와이프는 결혼하며 신혼집을 꾸미기 시작할 때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집 꾸미기는 전문가에게 맡겨라’

실용주의 성향에 콘텐츠 마니아를 표방하는 미니 오타쿠로써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지만, 저는 순수히 와이프에게 집의 모든 권한을 일임하였습니다.

(물론 온전하게 순수히 권한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상이한 의견 차이에서 오는 작은 국지전들이 집안 곳곳에서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대패하였습니다.)


친환경 유기농 식단을 중심으로 건강한 삶을 표방하는 와이프는 피자를 꾸미는 것도 본인의 취향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피자 토핑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체다치즈도 더 얹어서 먹고 싶고, 페페로니와 버섯 등도 듬뿍 넣어 만들고 싶습니다.


모차렐라 치즈를 중심으로 치즈를 덜 넣고 야채 중심으로 피자를 설계하려는 와이프와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싸움은 집과 달리 쉽게 타협할 수 있었습니다. 집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반으로 나눌 수가 없었지만 피자라는 경계에서는 충분히 서로 각자의 영역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피자의 중간을 경계로 각자의 영역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각자가 꾸며서 만들어 가는 피자.


너무도 다른 우리가 한 집에서 함께 얽히며 같이 살아가듯,

서로 다른 두 스타일의 피자가 어쨌든 한판의 도우 위에 공존하듯.

각자의 취향과 존재감을 잃어가지 않으면서 함께하는 지금의 삶이 영원하길 기도해 봅니다.




이전 15화 마지막의 화려함, 깍두기 볶음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