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곰 Apr 19. 2023

맛있지만 멀리하고픈 카레

잘 먹지만 선호하지는 않게 되는 그 음식, 카레라이스


“오늘 저녁으로 뭐 먹을래?”


“카레? 집에 남은 버섯이랑 카레 해 먹자.”


“….. 흠…. 카레는 안 당겨- 딴 거 먹자.”


와이프가 카레를 먹자고 해서 짐짓 생각하는 척해봤지만 사실 전혀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키지 않게 짐짓 생각하는 척 대답을 해보지만 와이프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카레라이스라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카레를 못 먹거나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막상 먹을 기회가 생기면 남 부럽지 않게 아주 잘 먹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마 세상에는 저와 비슷한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크게 선호하지도, 그렇다고 못 먹지도 않는 음식 카레라이스.

제가 카레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맛보다도 이미지에 있습니다.


저에게 카레는 좀 징글징글한 느낌이 있습니다.


오늘도 카레인가요

어떤 추억들은 머릿속에서 잘 사라지지 않고 오래갑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기도 하죠. 카레는 저에게 그런 추억이 있는 음식입니다. (기억이라고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그 시절의 어머니는 정말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두 아이가 있는 싱글맘에 8평 남짓한 작은 월세 반지하집에 살면서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쉼 없이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보험 판매일을 하셨고 두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자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부단히 발품을 파셨습니다. 아직 30대 중반임에도 어머니의 발꿈치는 언제나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프다 하시면 저와 동생이 아직은 덜 영글었던 손으로 주물렀던 기억이 납니다. 두 아들들의 고사리 같은 손의 온기 속에서 그래도 그날의 피로를 조금은 잊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그리고 성장기의 두 아들들은 정말 끊임없이 먹고 또 먹어댔습니다. 훗날 어머니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십니다.


‘저녁 늦게 퇴근하면서 양손 가득 장을 보고 집에 들어오면 두 아이들이 있는데, 둥지로 먹이를 물고 날아온 어미새의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


어머니는 바쁘셨지만 항상 두 아이들의 끼니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항상 늦게 들어왔기에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허기를 책임져줄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하면서도 아이들의 식사를 해결할 본인만의 노하루를 개발하였습니다 바로 카레라이스-하이라이스-짜장으로 이어지는 루틴입니다. 커다란 국통에 한가득 카레를 끓이고 3~4일 동안 먹고 나면 그다음에는 하이라이스를 끓여서 한동안 먹습니다. 그리고 나면 짜장을 또 끓여서 먹고 다음에는 다시 카레로 돌아오는 패턴입니다.


당시에는 도대체 카레라이스와 하이라이스의 차이가 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사실상 카레-카레-짜장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물을 넉넉하게 넣어서 끓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쩔 때는 이게 카레 찌개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는 웃으면서 그때의 조금은 엉성했던 음식들에 대해 가족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다급한 마음으로 어머니께서 요리를 하셨을지 마음을 같이 헤아려 봅니다.  



기억과 추억사이

그때 너무 질리도록 먹은 기억이 앞서기 때문일까요.

지금도 카레를 먹자는 와이프의 제안에 제 대답은 대부분 ‘NO’입니다.


그때 그 시절의 기억들이 추억으로 자리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카레가 예전에는 너무 싫었습니다. 음식에 입맛이 물렸다기보다 기억이 물렸다고 할까요?


카레라는 음식이 저를 그 시절 8평 반지하의 기억을 회상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감정이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생각해 오다 적지 않은 나이가 들어서 그러한 생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우리 가족(엄마, 나, 동생)이 가장 함께 의지했던 시절이고 서로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던 시절입니다.

우리에게 서로 밖에 없던 그 시절. 경제적으로나 여려 면에서 힘들었었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끈끈한 한 가정이었을 수 있었던 시간들.


이제는 어느덧 스스로 다른 가정을 만들고 당시와는 비교과 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걸 넘어 그 순간들 자체가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전 07화 불혹, 숙성회가 좋아지는 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