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의 도구, 불같은 분노
숲 속에 사는 곤충 다큐를 본 이후, 선과 악의 구분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겼다. 모기와 유사한 생김새의 벌레는 개구리를 공격하는 종류였다. 무시무시하게 느낀 이유는 자기 몸집의 100배는 될 법한 개구리를 요구르트처럼 빨아먹으면서 동시에 짝짓기를 했기 때문이다. 벌레의 생태일 뿐이지만 뇌를 강타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상황마다 선악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저 벌레의 그것과 과연 다른가? 결국 인간 사회가 복잡할 뿐 생존의 본질은 같다는 오싹한 진실에 이른다.
성공으로 이르는 길에도 악의 에너지가 있다.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단선적인 주장은 평범한 사람들이 성공을 향해 높이뛰기하는 것을 오히려 막는다. 지금도 살만한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하며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메시지다. 성공 원리에는 숨은 영역이 있다.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는데, 몰라보게 성공한 사람들은 초기에 흔들리지 않고 몰두한 지점이 있다. 대개 분노가 그 연료가 된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세기의 광인 히스클리프를 보라. 그는 자신의 반쪽 캐시가 부잣집 도련님이 사는 저택에 머무는 동안 잠시 가출했다. 리버풀에서 미국 뉴올리언스행 범선을 타고. 그러나 곧 돌아온다. 캐시에게 사로잡혀 있는 그는 멀리 가지 않았다. 캐시가 부유한 에드거와 결혼하겠다고 가정부 엘렌에게 털어놓은 날, 절망과 분노로 폭발한 히스클리프는 폭풍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재력을 갖춘 말쑥한 신사 차림으로 유부녀 캐시 앞에 나타난다. 분노는 그의 힘이었다. 히스클리프의 삶을 바꾼 추진력은 복수심으로 발화된 것이다. 애초에 외지로 나가 혈혈단신으로 성공할 재능이 있었으니 진작에 성공했으면 캐시와 평탄한 결혼도 가능했을 텐데.
간다 마사노리 <비상식적 성공 법칙>에 제목 그대로 상식을 깨는 법칙이 나온다. 세상의 숱한 성공 스토리에 감춰진 비밀에 대하여. 사람이 생활패턴을 깨고 습관을 바꿔가며 치고 나가려면 악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주변에 해를 끼치라는 뜻은 아니다. 실행을 가로막는 내 안의 무수한 핑계를 불태우려면 응집된 에너지가 필수인데 보통 분노가 가장 활활 잘 타는 땔감이다. 나는 개구리 킬러 곤충과 같을 수 없으나 그 앞뒤 재지 않고 전진하는 힘을 생각한다. 책에서 저자는 악마가 되어라! 주문을 걸지 않는다. 다만 낮은 성과를 내는 회로를 반복하는 삶에 사정없이 돌팔매를 던진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서양의 옛날 이야기에도 늘 악이 등장한다. 동굴 낙원에 사는 어린이를 살해하고(예쁜이와 버들이, 박영만 저), 홀어머니는 산 중의 호랑이에게 광주리 떡을 뜯기다가 신체 마디마디마저 차례차례 먹힌다.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여우나 호랑이, 계모로 대상화하여 '우리'와 분리했지만 절로 느낀다. 근원은 내 마음속에 있다. 그 불을 감당해보라 인간이여! 내면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하울의 성을 움직이는 캘시퍼가 불의 악마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