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는 자살하지 않는다

우울한 인간의 특권에 대하여 : 안나 카레니나

by Gomsk

비비안 리가 연기한 안나 카레니나는 부릅뜬 눈으로 자신의 운명을 맞는다. 그 운명은 기차 플랫폼 끝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 그녀는 역에 들어서는 기차 앞으로 뛰어든다. 고뇌 끝에 내린 결론은 자살이다. 소피 마르소가 표현한 안나는 기차 아래에 엎드려 있다. 그녀가 고개를 드는 장면에서, 생이 100퍼센트 절망으로 가득 찰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안나는 자살을 후회한 것이다.


인간은 왜 자살을 떠올리는가? 자살로 몰고 가는 감정이 원인인가? 책 <안나 카레니나>에 안나가 브론스키와 살림을 일구고 사는 모습이 자세히 나온다. 영화보다 천천히 진행되었을 뿐 그녀의 삶이 서서히 침몰하는 것이 묘사되어 소름 끼쳤다. 결정타는 안나의 올케, 돌리가 방문했을 때이다. 돌리는 외도를 일삼는 남편이 생활비조차 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많은 아이들을 건사하고 있다. 낡은 옷처럼 느껴지는 자신과 세련된 옷을 입고 브론스키의 저택에서 우아하게 살고 있는 안나를 비교하는 순간, 돌리는 깨닫는다. 어서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얼마나 자신이 다행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 겉모습만 멀쩡할 뿐 안나의 내면이 붕괴되고 있음을 알아본 것이다. 안나는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었다.


우울은 병을 가져온다. 병은 몸에 나타나 재활을 위한 신호를 보낸다. 우울함은 있어야 할 것이 원하는 곳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든 자식이든 자존심이나 명예든. 우울은 혼란스러움이고 그 자체로 위험한 것은 아니다. 우울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 사달이 나는 것 같다. 벗어나는 안전한 열쇠를 지닌 자는 우울함도 감미로운 고통처럼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은 우울할 때가 있는가? 인간과 거리가 먼 생물을 떠올린다. 벌레는 아마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길고도 짧은 생을 중도에 끊지 않는다.


벌레는 100퍼센트의 삶을 산다. 완두콩 한 알을 열심히 파먹으면서 동시에 먼지 같은 녹색 배설물을 꽁지에 토해내는 연두색 애벌레를 보고 이렇게 열정적인 삶이 있을까 놀라웠다. 성장을 위해 오직 인풋만 있는 시간. 정해진 양이 채워지자 벌레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멈추고 약 2주간 갈색 고치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어느 날 자정 갑자기 전기불을 켰을 때, 고치 끝을 뚫고 핑크색 체액을 두 세 방울을 흘리며 밖으로 나온 것을 목격했다. 살짝 비틀린 촉촉한 날개를 말리고 있었고 다음날 아침 미련 없이 나방은 창밖으로 날아갔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위로의 강력한 수단이다 : 이러한 생각으로 사람들은 수많은 괴로운 밤을 잘 넘긴다." - 니체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127쪽


생각하는 힘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킬 때 자살이라는 좁은 골목에 들어선다. 그 골목 끝은 막혀있다. 빠져나갈 수 있는 길목이었다면, 그렇게 생각을 전환할 수만 있다면. 철학자는 복잡하게 고민할 것 없다고 시원하게 이른다. 우울은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을 견디기 위한 감정이다. 우울이 깊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것이니 관심이 필요할 뿐이다. 브론스키 못지않게 카레닌도 아내를 사랑했지만 아들 세료자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안나의 고통은 누구도 나눠갖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로 빠져나가야 했던 것일까? 인생은 자살이라는 빌런을 마주했을 때 요령껏 빠져나가야 살 수 있는 미로 게임 같다. 외나무다리 같은 길목에서 유령 같은 얼굴로 '자살'이 서있으면 어떻게든 그 건장한 어깨를 비껴 달아나자. 순간을 모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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