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길들여진 거친 존재가 주는 생동감에 대하여
하루에 두어 번 다니는 버스에서 내려 논과 논 사이로 난 길을 30분은 족히 걸어 들어가야 했다. 첩첩산중은 아니지만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같은 성씨끼리 모여사는 외진 마을이었다. 그곳은 나의 외갓집이다. 집집마다 염소가 있고 돼지가 있고 닭이 있고 누에를 기르는 더운 방도 있었으며 당연히 누렁소가 쓰는 독채, 외양간도 있었다. 어릴 때 보면 소처럼 큰 동물이 순순히 묶여 있는 것이 신기했다. 긴 속눈썹을 간간히 떨며 때로 꼬리를 휘둘렀다. 트랙터가 들어서기엔 아기자기한 작은 논을 소가 쟁기를 끌며 드르륵 갈아엎었다. 너른 평야를 본 적이 없었기에 논은 무조건 넓은 마당만 하고 계단처럼 덧대어 있는 줄 알았다. 나는 높낮이가 다른 논두렁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넘어 다녔다. 나이 든 어른들은 모두 바빴다.
외갓집 녹슨 철문은 거의 열려있었는데 담장이 철저하게 둘러진 동네도 아니라 문단속은 의미 없었다. 다만 대문 안쪽에 덩치 큰 잡종 개가 살고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거친 동물로 몸집이 비슷한 나를 보면 으르렁거렸다. 그럼 나는 똑같이 으름장을 놓으며 개를 약 올렸다. 개는 가쁜 숨을 내쉬며 내게 달려들었다. 쇠사슬로 된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개 입김이 코앞에 뿜어지도록 나는 개 주변을 알짱거렸다. 지금 돌이켜보니 미안한 마음이다. 건장한 그 개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고 얼마 후 살던 개집에서 사라졌다. 아픈 외할머니 약으로 쓰인 것이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송아지를 시골장에 팔려고 외양간에서 끌어낼 때 옅은 갈색 털이 덮인 사다리꼴 머리를 쓸며 울었다. 말랑한 송아지 코에 코뚜레가 걸린다니 가여워서 매달렸다. 가장 짠한 것은 지척에서 슬피 우는 어미소였다. 소는 큰 머리를 들어 올려 울었고 눈동자는 송아지를 좇느라 희번덕했다. 나는 송아지가 얌전히 어미 옆에 웅크리고 있거나 젖 먹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에 그 귀여운 동물이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그토록 슬펐다. 그런데 개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는 왜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시골에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설 일도 없지만 개는 사람만 지나가면 짖었던 것 같다. 그럴 때 개가 짖는 소리는 짧은 경고음처럼 끊어졌다. 개는 외갓집에서 태어난 강아지가 아니라 장터에서 외할아버지가 사 왔기에 갑자기 같이 살게 된 경우다. 그래도 그 개는 나와 놀아준 짐승이었고 뭔가 들개 같기도 했다. 흥분하면 나를 물어뜯을 수도 있었다. 어린아이는 멋모르고 그 스릴을 즐긴다. 그리고 깜깜한 밤에는 늑대처럼 길게 울었다. 건너 건너 집에 사는 개가 짖을 때 이어서 짖기도 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개는 그 시절 나와 닮았다. 한밤 중 개 짖는 소리는 새까맣게 칠한 듯한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온다는 어른들의 거짓부렁을 반쯤 믿게 했다. 개는 산에 살지 않고 들에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반려견은 아니었다.
동네 산책에 나서면 다양한 개를 마주한다. 말끔하게 포장된 인도를 목줄을 하고 총총 기품 있게 걷는다. 도시에 사는 주인 있는 강아지들은 내가 어린 시절 귀여워했던 송아지 같다. 물론 송아지만 한 반려견도 종종 있다. 그리고 개 짖는 소리는 소음으로 간주되어 도시의 수많은 개는 목소리를 낮추고 산다. 가끔, 전깃불 꺼진 거대한 어둠을 가르던 개 짖는 소리가 떠오른다. 그건 고요하게 가라앉은 공기에 묘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유년의 놀이 상대가 사라졌을 때 나는 울지 않았지만 그 개가 길게 짖던 시골 밤 정취는 영구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