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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나 Nov 08. 2020

책 선물에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직장인이라는 사람들은 상사의 이상(理想)을 실현하거나 이상(異常)함을 실감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인종이라 정의해도 좋을지 모른다. 빈도로 따지자면 이상보다는 이상함 쪽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지만. (이상 따위 알 게 뭐람.)


우리 아버지는 오십 세 생일에 상사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일본 작가를 아시는지? 영화로도 만들어진 연애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쓴 사람인데, 아버지가 받은 책은 그 소설가가 이천 년대 중반에 낸 “열 명의 여고생, 그리고 여섯 개의 이야기”라는 소개가 붙은 청춘소설이었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세무서장쯤 되는 사람이 직원에게 줄 선물을 손수 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가(대신) 골랐든 간에 아버지가 받은 선물은 중년 남성 공무원의 취향을 고려하여 신중히 선택되었을 리 만무한 아이템이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불평할 이유는 없다.


내가 신경 쓰였던 것은 그 책에 선물로서 ‘재활용된’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맨 첫 장에 제본되었던 색지는 고르지 않게 찢겨나갔고, “000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세무서장 000 드림”이라는 문구가 흰 내지에 적혀 있었다. 같은 책을 대량 구매해서 한꺼번에 축하 메시지를 쓰다가 같은 사람의 이름을 두 번 써버리기라도 했던 건가. 색지를 찢어내야 했던 세세한 사정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무서장이 직원의 생일선물에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알뜰한 사람이라는 점 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책이 너무 가엾다. 우리 아버지야 뭐, 원래 상사가 마음 씀씀이든 업무추진비든 넉넉지 못한 사람이려니 했을 테지만(안 그러면 어쩐단 말인가), 책한테는 아무래도 너무한 처사다. 마구잡이로 사들여져 건성으로 써내리는 문구를 몸에 새긴 채 어느 집 책장에 갇혀 색이 바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전생에 책이었는지 종이였는지 알 게 뭐겠냐마는 아무래도 동정이 간다.


높은 사람들은 무슨 책이든 가리지 않고 ‘책’을 ‘선물’하면 멋있어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언젠가 우리 사무실에 어느 각본가가 대본집 증정본을 잔뜩 보내왔기에 사람들이 한 권씩 나누어 가진 적이 있다. 그러고도 남은 것은 모두 일인자에게 헌납했었는데, 그걸 일인자가 직원들의 생일선물로 재활용할 줄이야. 소인배가 어찌 장사(壯士)의 뜻을 알랴마는, 나는 두 권까지는 필요 없는 그 책을 헌책방에 가져다 팔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과 초코우유를 사 먹었다. (이렇듯 책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의 양식이 되기도 합니다.)


함부로 책 선물을 할 일이 아니다. 책은 문제가 없지만, 책을 선물하는 높은 사람들은 종종(자주) 이상하다. 당신이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면 평판도 물론이거니와 환경보호를 위해서라도 부하 직원에게 책 선물하지 않기를 강하게 권한다.


일개 ‘직장인 1’에 불과한 나는 사무실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한가해서 그런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를.


조선일보 황지윤 기자님께서 기사를 써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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