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진선카페
그 무렵은, 이야기들이 들쑤시고 일어났다. 곰팡이 찬 반지하방 장판 들리듯 기어이 올라오겠다는데야 쓰는 것 말고 도리가 없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처음으로 사진 없이 A4 3장 분량의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것 진짜 있었던 일인가요? 아니면 소설인가요?” “몰입도가 장난 아니에요. 덕분에 진짜 제대로 된 글 하나 읽은 기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직접 쓰신 건가요? 아니면 기존 소설을 옮겨적으신건가요?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나는 그냥 내 추억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오랜 이웃님들은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며 재미있다고, 심지어 감사하다고까지 하니 어리둥절했다. 사실 내가 봐도 잘 썼다. 잘 다듬으면 진짜 소설이 될 것도 같았다.
도대체 내가 쓴 게 무엇인지만이라도 알고 싶어.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에서 20대 주인공 영인 역시 자신이 무작정 쓴 무언가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영인은 동네 카페에서 죽치며 소설을 쓴다는 등단작가를 찾아가 자기 글을 보여주면서 비공식 첨삭수업을 받는다. 공신력 있는 누군가에게 자기 글을 검증받고 싶었던 그 마음이 꼭 나 같아서, 홀리듯 책 속의 자취를 따라 계동의 현대사옥, 헌법재판소 사이를 지나 무작정 걸었다. 초여름, 거리의 가로수는 아찔한 녹색이었고 바닥에서는 도시 열이 피어나 조금만 걸어도 땀이 촉촉하게 배어났다. 어느덧 삼청동이었다.
내게도 ‘라이팅 클럽’이, 글쓰기 선생님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5년 전, 매주 목요일 10시 30분. 문학동네의 자회사인 북하우스에서 운영하는 디어 라이프 에세이 클럽이었다. 그때 우리를 지도해주시던 강선생님은 등단 10년 차 소설가이시면서 주로 대기업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시는 프로셨다. 과연 세상은 넓고 글을 쓰겠다는 사람은 많았다. 글쓰기 클럽의 연령대는 글을 쓰겠다는 동기만큼이나 다양했다. 주제는 자서전 쓰기였으나 나는 도대체 나에 대해 써서 무얼 하겠나 싶어 처음부터 심드렁했다. 다만 선생님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만큼은 아주 흥미로웠다.
애 유치원 차 태워 보내고 동네 엄마들이랑 모여서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그렇게 놀다 보면 애가 집에서 올 시간이었어요. 그날도 누구네 집일까, 전 잘 부쳐먹고 유치원에서 오는 애 받아다가 집에 와서 씻기고 재웠어요. 그런데 그냥 눈물이 나는 거예요. 펑펑 울었어요. 이제 나는 어떻게 하나.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죠. 마침 사모님이 받으시더라고요. 선생님 제자 강*이라고 합니다. 하니 사모님이 단박에 알아들으시는 거예요. 선생님이 글 잘 쓰던 학생이라고 자주 얘기하셔서 기억하고 있다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저에게는 용기가 되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껏 전 잘 부쳐 먹고 집에 와서 운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눈앞에서 듣는 현직 소설가의 데뷔 이야기는 박완서 선생의 마흔 살 데뷔보다 강력했었다. 나는 망설이다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의 선생님이 그랬듯.
삼청동의 진선카페 마당에서였다.
글이라는 매개는 5년의 세월을 어제처럼 압축시켰다. 우리는 라이팅 클럽을 추억하며 그때 누구는 어떻게 되었고, 누구는 여전히 글을 쓰고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대화의 중간쯤 나는 안부를 가장한 속내를 드러내었다.
“선생님, 제가 요즘 글이 아주 잘 써져 서요. 글쎄 읽어본 사람들이 소설 같다는 이야기들을 하더라고요.”라고 넌지시 말을 흘렸다. 그래요? 당장 우리 만나서 글을 읽어봅시다! 할 것을 기대했던 것일까.
선생님은 건조하게 한 말씀하셨다.
“그게, 소설 같은 거지 소설은 아니잖아요.”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덧붙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갑자기 글이 잘 써진다고 했죠?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소설창작반 수업을 듣건, 에세이반을 듣건 무슨 수업이건 듣겠다는 건 좋아요. 무조건 그 기세를 이어가야 해요. 글이 잘 써지는 시기는 곧 사라질꺼니까요.”
그 이후에도 우리는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지만 찬물 끼얹어지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전 부쳐먹고 펑펑 울던 날의 에피소드만 날름 받아먹고, 그 후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소설을 썼습니다 하는 버전만 멋대로 상상했다. 선생님이 10년간 소설가 밑에서 도제 생활을 했었다는 것도 그날 통화로 처음 알았다. 지난 몇 년간 강의를 하면서 나 같이 어줍지 않게 소설 같은 거나 한 번 써보겠다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셨을까. 선생님에 대한 죄송함과 나 자신의 가벼움이 순식간에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젊은 영인처럼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거였다. 글을 쓰는데 신탁이 필요할 리 없다는 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
통화를 끝내고 한참을 진선카페에 앉아있었다. 더웠다. 진즉에 비어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잔이 테이블 위 <라이팅 클럽> 옆에 놓여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십오 년 전쯤, 친구들과 진선카페에 왔었다. 그때 이름은 진선 북카페였다. 북카페라는 개념이 흔치 않던 시절, 2층 진선출판사를 낀, 지금과는 다른 모양새였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들려야 하는 삼청동 명소였다. 그 무렵에도 나는 무언가 써보겠다고 설치고 다녔으나 무얼 쓰고 싶은지는 자신도 잘 몰랐다. 언젠가 책을 내겠다고 떠벌리고 다녔으나 화려한 야망이 비루한 한 줄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돌고 돌아 나는 결국 또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무성하게 발목을 휘감던 잡초들 사이에서 푹 익은 풀냄새, 가꿔지지 않은 시골 냄새 같은 게 났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추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갑작스레 더워진 테라스에는 나 혼자 뿐이었고 실내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도 아련하게 멀어졌다. 일렁이던 봄날은 극에 달하다가 급속하게 시들었고 3시 무렵이었지만 이미 저녁을 향해가는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예언인지 저주인지 정말 그 무렵부터 글이 써지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소설 같은 거지 소설은 아닌 것들이라도 붙잡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것 혹은 소설이 아닌 것 -삼청동 진선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