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정원 에세이를 로망 하지만 카렐 차페크같이 재미있기를!
나의 작은 정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우선, 어쩌다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부터 털어 놓아보자. 나는 말수가 적은 사람인지라 여럿이 대화하게 되면 말을 술술 풀어내는 사람의 화젯거리에 장단을 맞추거나 예의바른 청자가 되어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편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과 단 둘이 있을지라면 상대방이 어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길 바라며 다소간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물론 이것도 상대적인 것이라 때로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거나 신나서 말하게 되는 경우도 가뭄에 콩나듯 있지만 그건 가족들이나 25년 지기 친구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예외적으로 내가 먼저 신나서 말을 꺼낸 경우가 약 10여년 전에 있었는데 그 대화의 상대가 지금의 남편이니까 역시나 예비 가족인 셈이었다. 심지어 남편은 나보다 더 말수가 적어 이제는 단 둘이 있으면 할 말이 없어 절로 묵언 수행을 한다. 때때로 침묵을 깨고 정보 교차 확인, 전략 회의, 기획 회의 등을 아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내가 어쩌면 가르치는 일을 하는 건 참 적성에 안 맞는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잘 맞는 듯도 한 것이 가르치는 동안은 할 말이 주어지지 않는가?! 가르칠 내용에 대해서 말을 하거나 지시하고 피드백하는 등 목적있는 말을 하는 게 수업 그 자체니까 가르치는 일은 일말의 편안함을 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친교를 나누는 대화 영역에 오면 나는 그저 조용한 청자 되고 만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대화의 중간에 불현듯 나의 관심과 생각이 언어로 드러나면 뜻하는 바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다는 감각이 늘 함께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충분히 이해시키고 싶어 노력하는 도중에 대화의 순서가 넘어가 버린다거나 심지어 나도 완전히 소화되지 않은 생각이 어정쩡한 단어로 전해져 나도 만족하지 못하고 상대방도 오해하는 등의 심란한 사태가 생기기도 한다. 마치 파도타기 하듯 대화를 이어가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심해 잠수랄까. 나는 그만 말을 줄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마음 속에 가득해서 나 자신한테 그 말을 하기로 했다. 그게 글쓰기가 되었다. 자녀 사진을 SNS에 올리고 자랑하고 싶은 것과 같은 마음에서 내 ‘정원’ 글쓰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사실 남들이 자녀와 함께 즐겁게 여행 다니는 SNS의 사진들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뜻 깊은 경험을 하고 싶은 거지 남들이 경험한 것을 구경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가 넘쳐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 너머 언어로는 적절히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지점들을 기록하고 싶고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의지가 아닐까? 딱 그러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