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데이트

2025년 가을.

by 공담소

모처럼 시간을 냈다. 평일 낮에 아이 둘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는 것은 큰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이었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봄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가지 못했다. 어쩌면 일 년에 몇 주 안 되는 가을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면 평일이어야만 했다.


우리는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한 계획 짜기에 돌입했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 출발해야 하고, 아이들의 점심시간, 낮잠시간도 고려했다. 오래 걷기가 힘든 아이를 위해 리프트를 타고 동물원 위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내려오면서 구경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여행 당일, 길이 생각보다 막히지 않았다. 주차를 한 뒤 둘째에게 분유를 주고 본격적으로 탐험을 시작했다. 코끼리 열차를 타고 동물원으로 향하는 길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열차에서 내려 매점으로 곧장 이동해 점심을 먼저 먹었다. 아침부터 느린 손으로 열심히 볶음밥과 된장국을 준비했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편의점 라면만 흡입했다.

'그래, 뭐라도 잘 먹으니 다행이지.'

이미 배가 든든한 둘째는 유아차에 앉아 잘 놀다가 남편이 아기띠를 해 안아주니 기쁜 듯이 팔을 휘저었다.


동물원 입구를 통과하자 바로 리프트 타는 곳이 보였다. 남편과 리프트를 타기로 이야기를 다 마친 상태였지만 흠칫 놀란 건 단 하나의 이유였다. 케이블카와 착각했다. 안전벨트도 없는 삐걱거리는 리프트에 아이 둘을 데리고 올라타야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리프트를 탈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유아차는 접힌 채 리프트에 먼저 올라탔다. 아기띠를 한 남편, 그 옆에 나, 그 옆에 아들이 서서 리프트가 우릴 태우길 기다렸다. 리프트 탑승을 도와주는 직원이 첫째를 번쩍 들어 리프트에 앉혀주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안전 바를 손으로 내려 출발했다.


"엄마 이거 보세요! 저기도 보세요! 사자는 어디 있을까요?"

다행히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았다. 혹시 하는 생각에 손이 덜덜 떨리지만, 끊임없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하며 무섭지 않은 척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성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기띠 안에 있는 녀석이 눈을 감고 울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식곤증이었다.

"응애-애-애!!!!"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감은 눈 끝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리프트는 왜 이리 긴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의 울음소리는 2분 정도 만에 그쳤다. 잠이 깨친 듯 또랑또랑해진 눈망울에는 아직 눈물이 맺혀있었지만 녀석의 표정이 마치 '나 왜 울었지?' 하는 듯했다. 동생이 우는 내내 오빠는 탁 트인 경치를 즐겼다. 선글라스를 끼고, 손잡이에 가까이 붙어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동물을 불렀다. 우리는 그렇게 10분 정도 날았다.


리프트 길이가 보여주었듯 동물원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계획대로 아기는 아기띠에, 유아는 유아차에 태워 본격 동물 구경을 시작했다. 책으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볼 때의 비현실감은 놀라웠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표범이 가장 먼저 인사를 해주었다. 그 화려한 무늬가 설렘지수를 높여주었다. 불곰은 생각했던 것의 두 배 크기였다. 집채만 하다는 것이 어떤 건지 몸소 보여주었다. 낙타는 예쁜 눈망울로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중간에서 만난 여러 동물들이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봐주었다.

이제 갈기가 있는 수사자를 보면 우리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인 '대동물관'을 갈 수 있었다. 육지 삼 대장 코끼리, 코뿔소, 하마를 오래 볼 참이었다. 그리고 언제 봐도 신비로운 기린, 홍학을 마무리로 집에 가면 되었다. 아이는 수사자를 처음 볼 것이었다. 자주 가는 동물원에서는 시간대가 안 맞아서 인지 수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타이밍이 좋았다. 우리가 있는 유리 벽면 앞에 수사자 세 마리가 줄을 지어 어슬렁거렸다. 방송 촬영팀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온 것을 보면 사자를 보기 좋은 기회임은 분명했다.

"건우야, 수사자야! 갈기 있는 사..."

이불처럼 덮여있는 서울대공원 지도가 싸했다. 그것을 들추니 목을 어깨 쪽으로 꺾은채 새근새근 잠든 어린이가 보였다. 선글라스 안으로는 눈이 감겨있었다. 차로 과천까지 오는데 한 시간, 동물원 입구까지 이동해서 점심 먹고 리프트 타는데 한 시간, 리프트에서 내린 지 삼십 분 만의 결과였다. 아빠에게 매달린 아기 캥거루도 힘을 축 늘어뜨리고는 잠에 들어 있었다. 주인공들이 잠들어 버렸다. 속이 끓는다.

"저기 벤치에나 앉을까?"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잠들지 않은 나와 동지는 코뿔소 우리 앞 벤치에 앉았다. 유아차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아기띠를 조절해 아기를 무릎에 앉히듯 감싸 안았다. '고카페인 함량'이라고 적힌 캔커피를 따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내 캔에서도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카-"

"캬아-"

어쩌면 내 욕심이었까? 자주 가는 동물원에는 없는 기린과 코뿔소, 하마를 보여주고 싶었다. 생각해 아이 입으로 동물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은 딱히 없는 것 같다. '기린은요?' 어린이대공원에는 없는 기린을 찾을 때마다 기린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함 마저 느꼈는데, 어쩌면 아이는 출석부 부르듯 이름만 불렀을 수도 있겠다. 노곤해진 몸에 달달한 카페인이 돌았다. 제법 차가워진 바람이 가슴에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다 마신 커피캔을 버리러 갔는데, 그쪽에서 코뿔소가 유독 잘 보였다. 이번에도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사육사가 간식을 주는 시간이었다. 평일 낮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만 보고 가자며 재촉하는 이도 없었다. 5분 정도 봤을까? 이번엔 하마 우리 쪽에서 사람을 모았다. 남편과 나는 잠든 녀석들을 데리고 그쪽으로 이동했다. 높은 가로수 사이로 뚫린 구멍으로 푸른 가을 하늘이 보였다. 그곳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만의 동물원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