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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사랑을 짐 지는 자녀(2)

조선시대 교육열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다른 나라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사회의 교육열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인가?

거슬러 가보자면, 우리는 조선시대로 올라가야 한다.


고려사회에서는 여성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남녀평등을 주창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여성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집안에 틀어박혀 외부 활동을 할 수 없는 사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가 도래하여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가 되면서 가부장적 사회로 진입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여성들은 집안에 갇혀서 살게 되었다.


사대부 가문의 남성들은 혼인을 하여 부인을 맞아도 부부관계에서 부인은 가문의 후손을 잇는 역할에 국한되었다.

조선시대 왕 중에 중전을 사랑하는 왕은 없다.

중전은 적자 왕손을 낳으면 부부로서 역할을 다 한 셈이다.

왕은 후궁과 사랑을 나눈다.


마찬가지로 사대부 양반들은 기생과 사랑을 나누며 사랑하는 기생을 혼자 독점하고자 하면 첩으로 들인다.

사대부 가문의 정경부인은 가문의 가부장적 권위에 갇혀 아들만 바로 보게 된다.

그러니 정경부인의 아들에 대한 집착과 교육열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자녀교육은 부인의 역할이니 남편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부인이 아들을 과거에 합격시켜 벼슬길이라도 오르게 되면 그 부인은 남편뿐 아니라 가문의 모든 남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다.

조선시대를 사는 양반가문 부인의 삶의 질은 아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달려 있었다.



근대~현대 한국의 어머니 사랑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이런 기나긴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탁월한 교육부 장관이 등장하여 정책을 입안한다 할지라도 이 교육열을 약화시킬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에 의한 교육열은 한국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자녀들은 능력이 부족해도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 모성원형을 발휘하면서 능력을 끌어올린다.

자녀는 어머니가 원하는 성적으로 끌어올리고, 어머니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어머니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며, 어머니가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다.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에 자녀들은 어머니의 욕망을 외면할 수 없다.

자녀는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고 오로지 어머니의 꿈을 실현하는 데에 삶의 목표를 두고 살았다.


지금의 30대 후반과 40대만 해도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점이 그 이전 세대와 차이점이다.

그들은 너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부모 세대와 같이 자녀를 많이 낳을 수가 없었다.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한 자녀에게는 줄 수 있어도 두 세 자녀에게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 자녀만 낳았다.


그런데 지금의 20대인 이대남 이대녀는 30~40대가 받은 부모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부모의 그 큰 사랑은 자녀에게 부담이 되어 짐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를 잠시 사랑하는 연애는 몰라도 상대방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랑은 부담스러워한다.

이대남 이대녀에게는 남녀간의 사랑도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 요소와 자기 존재의 요소가 구별이 되지 않은 탓이다.

그들은 그냥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가는 것도 버거운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있다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존재 요소에서 어머니 요소를 떨궈 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대남 이대녀는 잠깐의 사랑이면 족하다.

사랑이 깊어지면 두렵다.

뭐가 두려울까?

상대방 안에 어머니의 요소를 보게 될까 봐 두렵다.

이것은 원래 카사노바의 심리 전략이다.



어머니 요소로 짐 진 어느 청년


이 청년은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 죄책감과 의무감으로 가득 차 있다.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해 줬지만, 그 사랑은 사실상 아버지에게 줘야 할 사랑을 받은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했다.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의무적 사랑을 해야 했기에 남편의 일탈과 억압에도 저항하지 않고 자기감정을 한없이 숨기기만 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남편이 어떤 별난 짓을 해도 눈감아 주고 한없이 이해해 주고 용서했다.   

어머니는 이런 일에 익숙해졌지만, 그 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관계를 어릴 때부터 다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벌리는 별의별 유치한 짓, 가족을 향한 폭언,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주식 및 코인 투자로 집안에 부채가 늘어나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했던 사건, 친척들에게 사기당한 일, 친구 보증 서 주다가 쫄딱 망한 일 등 다른 가정 같으면 평생 한 두 가지를 겪는다면, 이 집안은 열 가지 굵직한 사건을 겪었다.

다른 가정 같았으면 다섯 번도 더 이혼했을 상황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행을 묵묵히 용서하고 참아냈다.

어머니의 담담한 태도와 경제적 기술전략 덕분에 그 가정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 아들은 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은 가정을 살려야 된다는 책임감,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는 용서가 그의 삶이 되어 버렸다.

자기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면 그 사람들이 뭔가 불편함이 있으면 자기 책임으로 돌려 문제를 해결해 줘야 했다.

고등학생 때 빵 하나가 생기면, 혼자 맛있게 먹으면 되는데 '이걸 누구와 나눠먹지?' 하는 고민을 했다.

그 고민은 혼자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온 것이다.

그의 책임감은 친척, 학교 동료, 사회, 전인류적 책임감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책임감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구를 짊어지는 아틀라스를 연상케 한다.

그의 용서 또한 무한대로 발전하여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전인류를 향한 용서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어느 날, 이런 착각을 한다.


   '혹시 내가 그리스도 메시아가 아닐까?'


어머니의 무한대의 용서의 책임감은 아이로 하여금 전 가족, 전 친척, 전 사회, 전 인류적 규모로 발전해 버렸다.

이 청년은 자신의 존재 요소와 어머니 요소를 구별해 내지 못해, 어머니의 무한대의 사랑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이 청년이 종교 지도자가 되면 어느 새 그는 신흥종교의 교주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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